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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Jun 15. 2016

"잘살고" 있습니까, "잘 살고" 있습니까?

    오랜만에 동창들이 만나면 안부를 묻기 바쁘다.

    "그 친구 잘 살고 있냐?"

    "응, 사업에 성공해서 잘살고 있다."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새로 사귄 친구 자랑을 한다.

    "엄마, 그 친구네 집은 진짜 잘살아."

    "그러니? 하하. 너는 커서 잘 살아라."


    친구가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 돈을 벌어 부유하게 산다고 답을 했고, 친구네 집이 돈이 많다는 아들에게 크면 멋지게 훌륭하게 살라고 엄마가 기원해준다. 띄어 쓰는 '잘 살다'와 붙여 쓰는 '잘살다'는 혼동하기 십상이지만 전혀 다른 뜻이다. 가끔 어떤 이들은 "자알 살다"와 같이 '잘'을 길게 발음하기도 하지만, 둘 다 짧게 발음해야 한다. 그러니 더 혼동하기 쉽다. (여기서, '혼동하기 쉽다'는 '혼동하기 십상이다'와 헷갈리기 쉽다.) 


    '잘살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는 동사로서 '부유하게 살다'라는 뜻이다. 어떤 일이 '잘되다'와 공부를 '잘하다'에서와 같은 형태로 결합된 동사다. 반면, '잘'은 아래와 같은 뜻을 표현하는 부사다. 

「1」 옳고 바르게.

「2」 좋고 훌륭하게.

「3」 익숙하고 능란하게.

「4」 자세하고 정확하게. 또는 분명하고 또렷이.

「5」 아주 적절하게. 또는 아주 알맞게.

「6」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

「7」 버릇으로 자주.

「8」 유감없이 충분하게.

「9」 아주 만족스럽게.

「10」 예사롭거나 쉽게.

「11」 기능 면에서 아주 만족스럽게.

「12」 친절하게 성의껏.

「13」 아주 멋지게. 또는 아름답고 예쁘게.

「14」((흔히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충분하고 넉넉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발음과 띄어쓰기 때문인지 몰라도, 요즘에는 '잘 사는' 것보다는 '잘사는' 것에 관심이 더 많은 듯하다. 앞의 것은 영어로 'live well' 또는 'live right', 뒤의 것은 'live rich'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 써놓고 보면 우리말보다는 훨씬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졸업한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듯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멋지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돈 잘 벌고 산다'라고 답하는 것이 특별히 어색하지 않다면 우리가 혹시 너무나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를 가름하는 기준만이 오늘날 우리의 가정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옳고 바르게' 살고 있을까? 나는 '훌륭하게' 살고 있을까? 나는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 살고 있을까? 나는 '아주 만족스럽게' 살고 있을까? 나는 '아주 멋지게, 아름답고 예쁘게' 살고 있을까? 내 마음속에서 이러한 물음에 바로 '돈이 많으면'이라는 조건이 바늘에 실가듯이 따라붙으려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부유하게 산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모두가 바라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잘사는' 것에 관심이 많고 또 '잘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잘 살지' 않으면서 '잘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가끔 고개를 든다. '잘살기' 위해서 먼저 '잘 사는' 연습을 더 충실히 하고 싶다. 누구 '잘사느냐'고 묻더라도 '잘 사느냐'로 알아듣고 싶다. 누가 '잘사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잘 사는지'를 보고 배우고 싶다. 그런 나를 보고 내 아이들도 '잘 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살면 저절로 '잘살' 것이라고 하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일까?


수 년 전 이른 아침 스위스의 잔잔한 레만 호수에 작은 배를 띄우고 낚시대를 드리우던 세 사람은 편안하고 순조롭고 만족스럽고 멋지게 보였다.  ©오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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