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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Jun 20. 2016

내 아이들이 살았으면 하는 인생

조지 H.W. 부시의 편지, 오바마의 연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어 버린 지금, 세상이 예전보다 더 메마르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장을 잃거나 자손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류는 급격한 발전을 이룰 때마다 똑같은 경험을 해왔다. 다만, 세대 간에 그러한 경험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못한 까닭에, 혹은 뒤에 오는 세대들은 언제나 선조들보다 더 험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선입견 때문에, 지난 세대들이 어떻게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는지 잊어버리고 살뿐이다.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세대가 되어 버린 듯하다. 그러기에 삶의 근본을 질문하는 인문학이 입시학원의 과목들처럼 시류를 타는 '가벼운 세대'를 살고 있다. 싸구려 술을 마시며 개똥철학을 논하던 주점은 더 이상 대학가에 발붙일 틈이 없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과 같은 책 같지 않은 책을 옆에 두고, 그나마도 책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방금 먹은 점심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세대를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다. 경쟁 때문이라지만 너무 삭막한 마음으로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생활에 활력을 주는 웃음이 기껏 B급 개그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꼰대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다.




    지난 몇 주 동안 인터넷 상에서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부시 George H.W. Bush가 다음 대통령인 빌 클린턴 William J. Clinton에게 남긴 편지가 회자되었다.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대선에서 패배한 부시가 승리한 클린턴에게 남겨 준 따뜻한 조언이 담긴 편지다. 개인적인 바람과 함께, 대통령으로서의 성공이 미국의 성공임을 상기시키며, 어렵고 외로운 자리를 맡는 새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행운을 기원한다. 참으로 멋진 편지가 아닌가? 그의 인격이 묻어나는 편지다. 부시가 부통령 시절에 했던 연설을 보면서, 뜻도 모르면서, 그의 반듯한 모습과 영어 발음을 흠모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편지가 갑자기 너무 세상의 관심을 받는 것이 공화당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까? 불과 며칠 전에 힐러리도 편지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적인 가치를 강조하였다.


http://edition.cnn.com/videos/politics/2016/06/14/hillary-clinton-george-h-w-bush-letter-bill-clinton.cnn




    한 달 전쯤에는 미국의 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의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연설이 화제가 되었다. 8년째 연례 만찬에서 유쾌한 연설을 했던 오바마는 올해는 더욱더 기발한 재치와 유머로 청중은 물론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능청맞은 표정으로 공화당의 대선후보들까지 유쾌한 웃음거리로 만드는 그의 연설은 너와 나, 여당과 야당, 흑인과 백인 같은 문제들은 잠시 잊어버리고 모두 함께 손뼉 치게 만들었다. 그의 유머는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사를 전하고, 얄밉고 야속했던 사람들에게는 촌철살인의 웃음으로 에둘러 마음을 전하기도 하며, 자신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어 누구라도 그 저녁만큼은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한 문장도 웃지 않고 지나기 어렵다. 코미디 쇼 같은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전에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오바마의 지난 연임 기간 동안 오바마를 가장 잘 요약한 비디오를 선물한다. 당연히 그 비디오에서도 오바마는 웃음을 선사한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질까 봐 아래에 링크를 달았다.


"2016년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연설" - 백악관 공식 유튜브 (오바마의 연설만)

https://youtu.be/l-5vD5YVLv8


"2016년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연설" - US News 유튜브 (기자단의 비디오 포함)

https://youtu.be/wYB-NuW_SRo



    오바마가 특별해서 이렇듯 멋진 웃음을 선사한 것일까? 그의 전임자들의 연설을 찾아보았다. 따뜻한 편지를 썼던 부시 대통령의 아들,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연설도 오바마 못지않다. 그의 전임자, 42대 클린턴 또한 퇴임을 앞둔 자신의 모습을 풍자한 비디오에 직접 출연하여 커다란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2008년 조지 W 부시의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연설"

https://youtu.be/16ZKO0uRr6Q



"2008년 조지 W 부시의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연설"

https://youtu.be/M31s0MNKr6Y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다 부시처럼 훌륭하거나, 다 저렇게 멋진 유머를 가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 물론 미국 사회가 유머에 대해, 특히 정치적인 유머에 대해 관대하지만, 개인이 훌륭하거나 유머가 넘치는지는 다 사람 나름일 게다.


    난 마음이 따뜻한 편이지만, 부시의 편지와 같은 품격을 아직은 배우지 못했다. 난 유머가 넘치는 분위기와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다른 이들의 유머를 곧잘 다큐처럼 알아듣는다. 둘 다 내가 조금은 더 노력해서 달라졌으면 하는 것들이다. 오십이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따뜻하고 품위 있는 인격과 언제라도 툭 튀어나오는 재치와 유머만큼 아쉬운 것이 별로 없다. 나에게는 물론이고, 어느 순간 한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적절한 재치와 유머를 순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서로를 따뜻하게 품어 주고 아끼고 격려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더 자주 많이 발견한다. 그럴 때면 저절로 그에게 손이 다가가고 고개가 숙여진다.


    내 아이들도 인생을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 살겠지만, 따뜻하고 재밌게 살기를 바란다. 알파고는 가질 수 없을 품격과 유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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