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의 탄생

기억은 흐려지고, 상처는 선명해진다.

by 미닝풀

나이가 들면, 어제의 일조차 흐릿해질 때가 있다.

분명 어제 일어난 일인데도,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의 색은 옅어지고, 농도는 희미해진다. 마치 빛에 바랜 오래된 사진처럼.


이제 마흔이 가까워진다.

돌아보는 일보다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점점 길어지는 인생의 후반전, 그 끝자락에는 어떤 내가 서 있을까.
머리카락에 희끗한 새치가 비칠 내 모습은 아직 낯설지만, 그 미래를 떠올리면
어쩐지 오래된 기억한 줄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린다.
그건 아픈 과거의 한 장면이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건 바로 상처의 기억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고, 동생도 사회에 나간 지 3년쯤 되었을 때
조심스레 이혼에 대해 물으셨다.
동생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왜 이제 해? 진작에 했어야 했다.”
그 말이 엄마에게 힘이 되었을까.
그날 이후, 두 분은 이혼하셨다.


그러나 내 트라우마는 그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훨씬 더 오래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작은 골방에서 평수가 두 배는 되는 아파트로 이사 가던 날,
세상이 한층 밝아 보였다.
1990년대 부산, 제조업의 전성기였다.
엄마가 늘 이야기하던 비누공장, 고무공장, 그리고 부모님이 함께 하시던 신발 사업.
그 시절, 우리는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공중화장실을 오가던 좁은 방을 벗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양면을 가진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행복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이제 조금 괜찮아졌나 보다’ 싶던 그 무렵,
불행은 늘 그렇듯 불쑥 찾아왔다.


아빠의 도박이었다.
밤마다 싸움이 이어졌고,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유리창이 깨지고, 물건이 던져지고,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 소리들은 내 마음을 산산조각 냈다.


잠든 척을 해도,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네가 가서 좀 말려라. 동생은 어리다 아이가.”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아빠의 씩씩대는 숨소리, 울듯 말듯한 엄마의 얼굴,
깨진 방문과 흩어진 유리 파편들.
그 모든 것이 눈앞에 선명히 남았다.


싸움이 끝난 새벽,
공기는 너무 조용하고 무거웠다.

다시 그 장면이 떠오를까 봐, 나는 바닥의 유리조각을 손으로 쓸었다.
손끝이 따끔했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이미 멍들고 찢겨버린 마음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그날의 기억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지금도 누군가의 화난 얼굴을 보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 온다.
말을 꺼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언제나 먼저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내 최선의 방어였다.
나는 그렇게, 회피형 인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