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인의 발자취를 따라 리버사이드 Riverside

안창호 시티, 오렌지 고을 하변동(河邊洞)을 걷다

by 너도밤

LA 동쪽 100km 근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 리버사이드(Riverside).

초기 이민 한인들이 '으리버싸이드'나 '하변동(河邊洞)'이라 부르곤 했던 이 고을은 1905년쯤부터 1910년대 중후반까지, 한인들이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며 집단 거주했던 공간이다.

도산 안창호와 <금산(The Golden Mountain)>의 작가 차의석, 1세대 이민 작가 전낙청 등 많은 한인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Riverside Amtrak Station_250609 촬영

2025년 6월 9일, 도시 전체가 초기 이민의 중요한 사적(史跡)인 리버사이드를 방문했다.

생각만 했던 답사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LA에서 만난 귀한 인연 덕분이었다.

같은 해 3월 USC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옆자리에 앉은 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안창호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며 초기 이민사를 연구하는 나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리버사이드 토박이이자 한인 2세로서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그분은 리버사이드에서 안창호 관련 여러 활동을 늘 주도하고 함께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리버사이드에 온다면 하루 온종일 투어를 해 주겠다며 꼭 한번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으레 하는 스몰톡이자 인사치레겠거니 하며 고마운 마음만 담았는데, 3개월 후 LA 방문 중 리버사이드를 답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연락을 했다.


그분은 너무나 고맙게도, 하루를 통으로 내어 리버사이드 곳곳 한인의 발자취가 조금이라도 스친 모든 곳을 데려다 주었다.

귀한 인연 덕에 잘 알려진 곳뿐만 아니라 검색으로는 다 알 수 없는 기념물까지 모두 돌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 리버사이드를 방문한다면 같은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소개해 준 모든 곳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 그분의 친절에 보답할 길이라고 여긴다.


LA에서 리버사이드 가는 길

Union Station에서 Riverside Amtrak까지 91-PV line 경로


리버사이드는 LA 여행객들이 동쪽으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등 자연 투어를 갈 때 들리기도 하는 도시이다.

차로는 1시간 남짓,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나는 LA 다운타운의 유니언 역에서 리버사이드 역까지 한번에 가는 기차를 이용했다.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다니는 기차라 시간을 잘 맞춰야 하고, 그나마도 오는 기차는 1시간이나 연착되어 시골 작은 기차역에 한가롭게 앉아 여유를 부려야 했다.


파차파캠프(Pachappa camp)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 '파차파캠프(Pachappa camp)'에 세워진 표지판_250609 촬영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리버사이드 역 바로 옆에 위치한 파차파캠프(Pachappa camp) 사적.

지금은 사람 사는 흔적이라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기찻길 옆 공간이지만 120년 전 이곳, Pachappa Avenue에는 20여 가구 총 100여 명이 판자촌을 짓고 마을을 이뤄 살며 오렌지 농장으로 일을 다녔다.

리버사이드 한인의 역사에 대해 모든 것을 연구한 UC Riverside의 장태한 교수는 이 구역을 '미국 최초의 한인타운'이라고 규정한다.

자료를 망라하여 '파차파 캠프'의 정확한 위치를 규명해 낸 그의 연구 덕에 리버사이드 시에서는 이곳을 역사 유적지로 지정하고 이 현판을 세웠다.


파차파 캠프의 역사

https://pachappacamp.ucr.edu/ko/history-timeline/


▲ 파차파 캠프 위치

https://maps.app.goo.gl/FQPKnPFbRPsb1Nos8


갈보리 장로교회 (Calvary Presbyterian Church)
Calvary Presbyterian Church 전경과 교회 내부_250609 촬영

갈보리 장로교회는 초기 한인의 정착과 종교 활동에 도움을 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장태한 교수에 따르면 대체로 기독교인이었던 한인들은 파차파 캠프에 도착한 직후 한인 장로 선교회를 설립했다. 이들은 리버사이드 갈보리 장로교회에 속해 따로 모여 예배를 드렸고, 이곳의 교인 명부에도 한국인의 이름이 남아 있다. 오렌지 농장주이자 이 교회 장로였던 코넬리우스 럼지(Cornelius E. Rumsey)가 안창호에게 한인 노동국 설립 기금을 대출해 주고 한인에게 농장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갈보리 교회 교인들이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선교 활동을 펼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에서 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교회 관리자의 호의 덕에 오래된 모임 공간과 벽에 걸린 옛 사진들을 열람할 수 있었다.


▲ Calvary Presbyterian Church 위치

https://maps.app.goo.gl/bKza9dU3PqzLRvxJ6


도산 안창호 기념 동상(Dosan Ahn Chang-Ho Memorial)


도산 안창호 기념 동상(Dosan Ahn Chang-Ho Memorial)_250609 촬영

본격적인 '안창호 투어'가 시작되는 도산 안창호 기념 동상.

도산 안창호는 유학을 위해 미주로 왔지만 먼저 온 한인들이 질서와 규율 없이 열악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이들을 규합할 필요성을 느꼈다.

당시 리버사이드는 오렌지 농사의 풍작으로 일자리가 많았는데, 1904년 이곳에 도착한 안창호는 노동국을 설립하고 한인들과 함께 노동하며 그들의 이주와 정착을 도왔다.


안창호의 공적과 리버사이드에 남긴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리버사이드 시는 온갖 곳에서 그를 기념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기념물이 이곳 도산 안창호 기념 동상.

시청과 유명 관광지인 Mission Inn 사이, 리버사이드의 중심가이자 번화가에 놓여 누구나 쉽게 기념물을 발견할 수 있다.


안창호의 행적을 소개하는 여러 전시물들_250609 촬영


▲ 도산 안창호 기념 동상(Dosan Ahn Chang-Ho Memorial) 위치

https://maps.app.goo.gl/9oGNVchewYvxTcjv9


에버그린 기념공원 (Evergreen Memorial Park)

에버그린 기념공원_250609 촬영


시내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에버그린 기념공원.

여기에 한인 몇 명이 잠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몰라 묘지석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LA에서 방문한 로즈데일 기념공원에서는 한국식과 미국식이 섞인 한글 묘비들이 흥미로웠는데, 이곳에도 김순학의 묘비가 그의 생애 기록과 함께 남아 있다고 한다.


△ 리버사이드 공원묘지서 '김순학'의 묘지 발견" (미주중앙일보 2018. 3. 11.)

https://www.koreadaily.com/article/6054956


▲ 에버그린 기념공원 (Evergreen Memorial Park) 위치

https://maps.app.goo.gl/CrJeiEUk14Xd9NQu8


'Walk of Fame'의 안창호


Civil Rights Institute 앞 'Walk of Fame'에 새겨진 안창호의 행적_250609 촬영

리버사이드 메인 도서관(Riverside Main Library) 맞은편에는 Civil Rights Institute라는 기관이 있는데, 기관 앞 인도에는 할리우드처럼 Walk of Fame(명예의 거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리버사이드 지역에서 시민의 권리를 위해 활동한 유명 인사들의 행적을 새겨 기념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안창호.

'겸손한 오렌지 픽커(A humble orange picker)'라는 설명과 함께 그의 생애가 간략히 적혀 있다.


Civil Rights Institute 위치

https://maps.app.goo.gl/PSUc1CWh8xmnR4zSA


미션 인 (Mission Inn)

미션 인 (Mission Inn) 입구와 역사를 말해주는 현판_250609 촬영

리버사이드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려본다는 유명 관광지 미션 인.

1902년 세워졌다는 이 오래된 랜드마크는 리버사이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호화로운 호텔이다.


이 지역의 오렌지 농사가 호황을 이루면서 미국과 유럽의 부유한 여행객과 유명인사들, 미국 대통령 여럿도 이 호화로운 건축물을 다녀갔다.

한인들 몇몇도 이 호텔에서 벨보이나 방 청소 등의 일을 했다고 한다.


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호화로운 미션 인 전경_250609 촬영


▲ 미션 인 위치

https://maps.app.goo.gl/JypVoqVYAhpoUt9CA



리버사이드 시청 (Riverside City Hall)

시청사 입구와 고층에서 올려다 본 리버사이드 전경_250609 촬영


날 가이드해준 분은 중간에 1시간 동안 나에게 카페에서 점심식사 겸 휴식할 시간을 주고는 리버사이드 시장님과 회의를 하러 다녀왔다.

내용은 모르지만 시청과 함께 여러 사회 일을 하는 듯 보였는데, 그렇게 시청 방문을 한 김에 나에게 시청 구경을 시켜 주어도 좋다는 허락을 기쁜 얼굴로 받아 왔다.


그 덕에 뚜벅이 여행자이자 학생일 뿐인 내가 뜻밖에 시청 구경까지 하는 호사를 누렸다.

고층까지 올라가니 밖으로 연결된 테라스의 파빌리온에서 리버사이드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산에 둘러싸여 정갈하고 깨끗하게 닦인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시청사 외부 테라스 정경. 시청을 떠받드는 기둥 중 하나가 안창호를 기념하고 있다. _250609 촬영


파빌리온의 기둥에는 시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름과 한마디가 새겨져 있었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또 안창호의 이름이 있었다. 시청을 방문한 한국 인사들은 꼭 이곳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나.


Riverside시의 자매 도시들. 우상단에 서울 강남이 있다.


여러모로 리버사이드시의 곳곳에서 안창호라는 이름 석 자를 귀중히 생각하고 기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도산공원이 있는 강남구는 리버사이드시와 1999년에 친선 결연을 맺고 안창호 동상 건립 등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안창호 투어의 마지막 조각을 시청에서 맞추고, 모든 것을 보여줬다며 뿌듯해 하는 가이드가 한없이 고마웠다.


▲ 리버사이드 시청 위치

https://maps.app.goo.gl/Z7T2pBQzh3NCSKu49


캘리포니아 시트러스 주립 역사 공원


꿀마저 오렌지맛인 오렌지의 도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시트러스 공원에는 도산 안창호 기념관이 세워질 예정이라 한다.


마지막 장소는 시트러스 주립공원.

도심에서는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는데 기차 시간 때문에 안에 제대로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입구만 둘러보고 나왔다.

오렌지 농사로 흥성했던 리버사이드는 지금도 가히 오렌지의 도시라 할 만했다.

기념품 가게에는 오렌지 주스, 오렌지 귀걸이, 오렌지 뱃지, 오렌지 꿀.. 모든 것이 오렌지�.


찬란했던 오렌지 왕국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 주립공원 부지에 도산안창호 기념관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기로 결정만 하고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라는데, 언제 계획대로 기념관이 세워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산업 역사에 대한 게시글. 한인 노동자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어 있다.

https://sweetandsourcitrus.org/from-citrus-to-logistics-centuries-of-labor/


▲ 캘리포니아 시트러스 주립역사공원 위치

https://maps.app.goo.gl/Nbhovr1Qiw9WUdur5




오렌지 따는 도산(1912)과 리버사이드 오렌지농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도산._ 대한인국민회 홈페이지


"오렌지 하나 정성스럽게 따는 것도 애국"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도산.

그가 한인들과 함께 마음과 정성을 모으고 세를 규합하여 터를 닦았던 곳 리버사이드.


미주 한인의 역사가 늘 독립운동의 역사로만 소개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이곳에서 온종일 귤을 따서 번 돈을 아끼고 아껴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던 한인들의 헌신은 찬탄받아 마땅하다.

초기 이주 한인의 역사를 연구하며 알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여기에 틈틈이 남겨 보려 한다.


오렌지 따는 것도 애국이고, 공부해서 글 하나 정성스럽게 쓰는 것도 애국일 터이니까.


리버사이드 노동주선 광고. 'contract'이 '컨트락'으로 차용된 모습이 눈에 띈다. (1909-12-15 신한민보)




♣ 더 읽을거리

장태한(2018), 파차파 캠프, 미국 최초의 한인타운, 성안당

장규식(2020). 리버사이드 한인 타운과 북미 한인사회의 형성. 역사문화연구, 76, 121-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