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주리 대학교에서 아동 발달을 가르치던 소니아는 며느리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는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는 것.
그 옛날에 어떻게, 왜 조선에서 미국까지 온 것인지.
동양인이 지나가면 돌을 던졌다던 그 시절, 미국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 남으셨는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한인 2세로 살아온 지 60년, 부모의 이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없던 소니아는 며느리의 질문을 듣고 큰 충격 내지 사명감을 느낀 듯싶다.
그녀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녹음기 하나를 든 채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들의 이야기부터 들으러 다녔다.
다니던 직장도 휴직하고 아무 대가 없이 홀로 미국 곳곳을 누비며 녹음한 어른들의 이야기.
숟가락 하나, 사진 한 장 손에 들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무더운 땅 하와이로, 다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건너건너 왔던 그 시절의 이야기.
소니아는 한인들이 살아온 한평생을 녹음기에 담았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말이다.
소니아의 부모는 미국 땅의 첫 이민자들이었다.
아버지 신한은 1903년에 하와이로 왔다.
황해도에 극심한 기근이 있었고, 과부 어머니와 하나뿐인 동생을 먹여살릴 방법이 한반도 땅에는 없었다.
18세 나이의 신한은 같은 처지의 한인들과 함께 하와이행 배에 올랐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밤낮없이 2년을 꼬박 일하니 겨우 캘리포니아로 가는 배삯이 모였다.
미국 본토인 캘리포니아로 가면 같은 시간을 일해도 하와이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어렵게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뒤 또 닥치는 대로 일했다.
잠깐 일하고 돌아가리라 생각했던 이민 생활은 점점 더 길어졌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었고 1913년에는 고국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신한에게는 돌아갈 고향 땅이 없어졌다.
조선에 주선을 부탁해 신부를 맞아들였다. 소니아의 어머니 박강애는 1914년, 홀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항에 내렸다. 사진 한 장만 믿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건너온 미국. 박강애는 소위 '사진신부'였다.
- 어머님이 그때. 어, 나이가 어렸지요?
- 나인틴[nineteen]
- 왜 떠나셨어요? 한국을.
- 그 친구가 (...) 내 오라바니하고.내 어머니 친군데, 와 가지고, 오니까네 미국이 좋다고. 그 내 오라버니한테 편지하기로. 그 동생을 미국을 보내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내 오라바니도 미국이 좋다는 말 듣고. 좋겠다고. 그래 나를 보내기로 해서 (...) 그이가 소개해서. 온 기야.
- 그이가 이제, 어, 신한 씨라고 하는 분한테 이제 소개해 주셨어요?
- 그래, 이제, 그래. 신한씨래, 그리 좋은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소개를 하고 오니까네. 그래 이제 나를 미국을 가라고, 나도 미국에 이제 좋대니까 오고 싶어.
- 그래 처음 인생이[인상이] 어떠랬어요? 아버님 얼굴.
- 천생 뭐,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 어더렇기는. 그저. 보니깐, 그저 보통이더만.
- 아주 잘 생긴 것 겉지 않았어요?
- no. 생전 보지도 못해. 잘생기고 뭐.
- 뭐 남자가 잘생긴거 몰라요?
- no.. 알지만은 뭐, 글케 잘생기고 어쩜 그런 것도 모르고...
박강애는 그렇게 미국에서 처음 본 남자 신한과 결혼했고, 신강애가 되었다.
abcd도 모르고 온 아내에게 열 살 많은 남편은 영어 책도 사 주었고,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혀 학교에도 보내주었다. 그렇게 얼마간 학교를 다니다 첫 딸 소니아가 태어났고, 세 아들을 더 낳았다.
아이가 아파서, 또 자신이 아파서. 여러 이유로 다니다 말다 하던 학교는 결국 끝마치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거기에 또다른 삶의 보람이 있었다.
신한은 여섯 식구를 건사하기 위해 이발 기술을 배웠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이발소를 차려 18년 간 이발사로 일했다. 이발소에 앉아 조잘대는 어린 소니아에게 신한은 늘 우리가 한국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번 돈을 한푼 두푼 모아 독립 자금으로 냈다. 3월 1일이 되면 교회에 모여 노래와 만세를 부르고 독립선언문을 읽었다. 고국이 마침내 바라던 독립을 이루었지만 이윽고 전쟁이 일어났고, 한반도는 두쪽으로 갈라졌다. 그들에게 돌아갈 땅은 없었지만 삶은 이어졌다. 새로운 땅 곳곳에서 아이들이 자라났고, 아이들이 또 아이들을 낳았다.
소니아같은 2세 아이들은 저마다 한국 이름도 있었지만 미국 이름으로 더 자주 불렸다. 소니아는 집에서는 성려였지만 학교에서는 소니아였다. 동생들도 대세, 대성, 대운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미국인에게는 너무 어려웠고, Daye, David, Daniel이라고 소개해야 그나마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학업을 마치지 못했지만 딸만큼은 열심히 가르쳤다. 소니아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졸업이 임박해 들은 소식은 동양인은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니아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전공은 미용학뿐이었다. 속상함에 눈물이 났지만 당시 동양인에게 허락되는 삶의 기회들은 그렇게 작고 좁았다.
소니아도 아버지처럼 차이나타운에 미용실을 열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은 뒤 석사과정에 진학해 아동발달을 연구했고, 나이가 들어서야 미주리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인으로, 그러나 한인으로 살며 환갑의 나이가 된 1970년대의 소니아.
미국 사회 곳곳에 한인의 후손들이 뿌리내려 살고 있었다. 소니아는 늘상 한글 신문을 읽고 아리랑을 부르며 울던 어른들을 보며 자랐지만 그 어른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미국인으로만 살아온 3세 자녀들은 한국어도, 한국도 잘 몰랐다. 각박했던 시대는 조금씩 나아졌고, 한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새로운 이민자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초기 한인은 몇천 명에 불과했지만 한 해에 몇만 명씩 한국인이 쏟아져 들어왔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묻는 며느리의 질문에 어른들의 역사가 잊혀지고 있음을 깨달은 소니아는 분주히 한인들의 구술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직장도 그만둔 채, 1975년부터 1년을 꼬박 구술사를 수집하러 다녔다. 모든 것이 서툴었지만 무작정 이야기를 받아 적었고, 밤새 노트를 뒤적거리고 녹음기를 멈춰가며 수집해 온 이야기를 타이핑하고 영어로 번역했다.
사명감과 애정 없이는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렇게 모인 수십 명 한인의 이야기가 지금 미국 대학 곳곳의 자료실에 남아 있다.
1945년까지 미국에 정착했던 한인의 수는 하와이에 6,500여 명, 미국 본토에 3천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짧은 미국 유학 시절 동안 미국 초기 한인 이주사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우연히 소니아의 구술사를 듣게 되었다. 테이프 넘어 흘러나오는 50년 전의 목소리들은 저마다의 굴곡진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고, 옛말과 사투리, 영어가 섞인 독특한 어투는 그들이 겪어온 삶 전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소니아가 남겨 놓은 한인의 이야기를 한글로도 옮겨 두어야겠다는 사명감, 그 독특한 어투가 가진 특징을 연구하여 세상에 소개하고 싶다는 학문적 호기심이 지금껏 나를 분주히 움직이게 하고 있다.
논문을 쓰는 한편 여기에는 소니아가 만난 한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 보려고 한다. 소니아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역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꺼내어 보여주는 일. 지금은 작고하신 소니아가 대가없이 했던 작업을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이어가 보려고 한다.
- 김성진 씨. 아 연세가 멫이십니까?
- 아흔다섯.
- 아흔다섯. 근데 미국을 오셨는데, 어느 해에 한국을 떠난 줄 생각 납니까?
- 그게 생각나지. 용 타임[young time]이니까
- young time 어느 해야요?
- 나인틴 오 파이브[nineteen oh five]. 그건 알아 뭐 할라고?
- 어, 저가요. 이런, 이제 information 가지고 이 다음에 책을 쓰든가 역사겉은 걸 쓰라고요. 그래야 우리 이제, 뭐라 캐요 우리 저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역사와 어, 어, 옛날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일찍이 미국 오셔서 어떻게 왔었고, 어떻게 지내신 것을 다 기록하기 위해서 그래요. (응.) 딴 나라 사람들은 다 기록이 있는데. 우리 한국 사람만은 없습니다.
- 한인 1세 김성진과의 인터뷰 中-
* 소니아 부모의 이야기는 'Sonia Sunoo(2002), Korean Picture Brides'의 서문을 참고했고, 소니아의 이야기는 '이선주, 로버타 장(2014), 하와이 한인사회의 성장사'를 참고했습니다.
* 소니아의 구술사를 활용한 연구의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은진(2025), 미국 ‘초기 이민’ 한인 1세 한국어의 어휘적 변이: 1975년경 소니아 신 선우가 수집한 구술사 인터뷰를 중심으로. 사회언어학, 33(4), 243-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