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외면했음을 반성한다.
꽤 틀에 박힌 인생을 살았다. 그게 적성에 맞았다. 당시에는 행운이었고, 지금은 한심할 뿐이다.
나는 모범생이었다. 아주 그린 듯한 모범생.
PC방에 가지 않았고, 전자기기보다 책을 가까이했으며, 시험이 끝난 당일에도 인터넷 강의를 보며 열심히 공부했다. 학원 하나, 과외 한번 없이 전교 1등을 도맡아 했을 정도면 설명이 될까.
졸업하던 해, 나는 인구 12만 명에 불과한 우리 시에서 단 한 명뿐인 의대 진학자였다. 2010년대 이후 ‘모범생’들이 으레 그러했듯.
내가 살아온 행적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아주 뻔한 종류의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관성적으로 ‘그런가 보네’를 중얼거리며 수긍했으니, 남 시선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겠지. 저 말로 온통 점철되어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단연 내 머리 상태가 1번이다.
이건 요샛말로 꽃밭이다. 대가리 꽃밭.
수능 날을 되새겨보면 한 서린 추위보다도, 책가방에 꽉꽉 들어찬 문제집보다도 숟가락이 달그락달그락 부딪치던 분홍색 도시락통이 떠오른다. 그만큼 긴장감이 없었다.
메뉴는 소고기뭇국에 반찬으로는 양념 두부조림과 연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칸막이를 세운 탓인지, 도시락을 열자마자 백미 밥의 더운 김과 함께 음식의 담백한 향이 얼굴로 훅 끼치더라. 그 먹음직스러운 증기 바람을 인식하는 순간 입맛이 아주 쫙 도는 게, 내가 한 3일은 굶은 줄 알았다.
… 봐라. 대가리 꽃밭이다, 나는.
하여튼, 열심히 살긴 살았다. 노력도 그만하면 하긴 했다. 동시에 나는 한없이 멍청했다. 성적표를 1로 채우고 세부 특기사항을 한계까지 맞추었지만, 정작 내 인생 시험지는 빵점이었다.
나는 뻔뻔하게도, 삶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 대단한 노력은 언제나 얄팍한 목표만을 향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 등수나, 다른 아이들보다 위에 서는 것 따위에.
나는 단 한 번도 내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 목표도 없었다. 그저 남이 만든 잘 깔린 레일만을 전전했을 뿐.
자립심? 그게 뭐지, 먹는 건가?
외우는 게 싫어 이과에 왔으면서, 암기투성이인 의대에 진학한 모순도 가뿐히 무시했다.
왜? 그게 편하니까. 철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다 괜찮다고 말했으니까. 이 레일이 언제까지고 단단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정답만을 선택했으니까.
가장 최악은, 인생의 선택지를 스스로 가지치기하면서도 전혀 아까워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새순을 집어 뽑으며 상처에는 양귀비 액을 들이부으면 부었지.
쉬운 길은 편하고, 중독적이었으며, 옳지 않았다. 그리고 KTX 아래의 것보다 튼튼해 보였던 그 철길은 2024년을 기점으로 녹이 슬었다.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꽃밭이 흘러간 바람을 기억하던가. 문득 찾아온 겨울에 언제나 수긍하며 잎이나 떨구지.
대가리 꽃밭이자 MBTI I 100%인 멍청이는 사태 초반, 길어진 방학을 즐기며 방에서 책을 봤다. 그렇다. 현실 파악을 못 했다. 솔직해지자면 아직도 제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반성문을 100개 정도 채우면 나아질까. 어쩌면 이 반성문을 쓰는 일조차 뻔뻔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거북하게도. 주위의 반응에서 길을 찾는 걸 넘어 자존감까지 채우곤 했으니, 나는 저 과학적 진실을 더욱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달이, 반년이 지나며 점점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이 감정이 생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부르고 등 따신 놈이 갑자기 왜? 뇌가 지금껏 한 번도 굴린 적 없던 톱니바퀴를 굴린 순간이었다. 그 톱니바퀴의 이름은 ‘생’이었다.
‘나 왜 이렇게 살고 있지?’
그렇다. 졸업 후의 미래는커녕, 당장 한 달 뒤의 내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미래의 나 그리기’ 따위를 해본 기억이 있는가. 어른인 자신을 상상하며 무엇이 달라졌을지 구체적으로 꼽아보는 활동이다. 보통은 직업이 주가 되겠지. 화가나 피아니스트, 선생님, 우주비행사 뭐 그런 걸 적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현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온통 안개였다. 참 한심하게도, 초등학교 2학년 때보다 후퇴한 것이다!
내가 어떤 과로 수련하고 싶은지(애초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의대생은 취준생일 뿐이니까.) 이런 문제를 넘어 수련을 하긴 할지, 직업 외에 하루를 어떤 식으로 채워갈지, 애초에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정말, 전혀, 단 하나의 단서도 없었다. 살아갈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무(無)였다.
내가 가진 건 같잖고 얄팍한 노력뿐이었다. 심지어 지금 와서는 잘 쓰지도 않는.
고등학교 때 공부? 의대? 학력이니 등급이니 그런 게 의미 있으려면 굉장히 좁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과외할 때나 쓸모 있을까. 기억 파먹고 살 것도 아니면서. 못 박힌 과거에서는 눈을 떼고 차라리 거울을 봐야 했다.
멍청하고 초라한 내가 그곳에 있었다.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뻔뻔하다’의 정의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라고 한다.
이 의미는 나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어련히 남들이 잘 만들어뒀겠거니, 하고 철길에서 생각 없이 구르던 나와.
계획을 세워 여행을 가 봐, 진로를 고민해 봐, 책을 써 봐, 돈을 모아 봐, 자기 계발을 해 봐.
심지어 나는 대학교 가기 전까지 카드 찍고 버스도 타본 적 없는 온실 잡초였다!
모범생이라고 상장도 여럿 받았으나, 그 실체는 이리도 대가리 꽃밭인 멍청이다!
그래서 이왕 뻔뻔한 김에, 이번에는 행동했다.
은행에 전화하고, 가족과 대화하고, 비행기표를 끊고, 무료 연재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학회 문을 두드리며 봉사 활동을 갔다. 용케도 남아있던 가능성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해온 어영부영함을 ‘으엑, 지지’하면서 한 조각씩 떨쳐 냈다.
내 MBTI 마지막 알파벳은 P.
무계획을 유일한 계획 삼아 꽃밭을 휘둘렀다. 나에게는 승인된 휴학계와 쓰는 법을 몰라 쌓아만 둔 통장 잔액이 있었다. 당연히 이 기간에 저기 들어 있던 돈을 대차게 썩히는 일도 있었으나, 이건 다른 반성문에서 다룰 일.
똑똑하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서 마냥 그런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가지가지 멍청하더라.
지금까지 단 1분 1초도 빼먹지 않고 내 인생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장담컨대, 나는 아마 멍청한 선택을 아주아주 많이 할 것이다.
저번 달만 해도 깻잎을 채썰기 위해서는 돌돌 말아야 한다는 걸 몰라서, 손으로 쭉쭉 찢었다. 어쩐지 안 잘리더라. 앞으로도 쭉 반성문을 써야 하겠지.
이건 저주가 아닌 진실이다.
‘에헴! 다들 나는 짱이랬어!’ 하며 피하지 말고, 솔직해지기로 했으니까. 자신을 인정해 보려고 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전부. 미우나 고우나 이건 내 삶이다. 외면은 필요 없다.
틀려도, 실수해도, 아무렴 어때. 그게 멍청이가 하는 짓인걸. 계속 대가리 꽃밭으로 살기보다, 차라리 세계 최강의 멍청이가 되련다. 멍청이는 반성문을 쓸 수 있다.
이렇게.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삶을 외면했음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