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수익률이 처참한 이유.

디폴트 옵션은 금융권의 안정적인 파이프라인일 뿐

by HK

82.6%

퇴직연금 전체 431조 중 원리금보장상품(예금) 비중


2024년 3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규모는 약 431조 7,000억 원 이다. 상상조차 힘든 이 거대한 자금 중 약 356.5조, 무려 82.6%가 원리금보장상품, 사실상 '예금'에 묶여 있다. 내 노후를 책임질 소중한 자산인 퇴직금이 물가상승률조차 따라잡지 못한 채 금고 속에서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퇴직연금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DC형 연금의 경우 내가 직접 투자하며 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퇴직연금, 금융권의 먹잇감이 되다.

2023년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의 도입


금융권에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가만히 놀고 있는 퇴직연금이 아주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에 따라 2023년 7월,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의무화됐다. 이제 DC형 퇴직연금과 IRP 계좌 내에서 현금으로 돈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사전 지정된 '디폴트 옵션' 펀드에서 운용되게 된다.


취지는 현금으로 가만히 두면 화폐가치가 떨어지니, 노동자의 퇴직금을 대신 일하게 만들어 수익을 내주는 명분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디폴트 옵션 펀드들의 수익률은 처참하다. 2~3%대, 심지어는 그냥 현금으로 들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금융권은 퇴직연금 수익률에 관심이 없다.

디폴트 옵션은 금융권의 안정적 파이프라인


금융권은 노동자의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펀드' 수익률에 관심이 없다. 이미 펀드를 의무화 하였고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한 영원히 자동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자금 파이프라인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펀드를 운용하면서 운용보수와 판매보수 등 여러가지 보수를 챙긴다. 수익률이 1%든 10%든 그들은 정해진 비율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수익률을 높이려 애쓸 이유가 없는 구조다. 어차피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채워질 돈이라면, 사고만 안 나게 적당히 굴리면서 안정적으로 보수만 챙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효율적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 은행의 디폴트 펀드는 다른 운용사의 TDF(타겟데이트펀드)를 50%, 30%, 20% 섞어놓은 것이 전부다. 소위 '재간접 펀드'라는 명목하에 남이 만든 상품을 다시 포장해서 파는 셈이다.


디폴트 펀드 운영 주체 입장에서는 괜히 퇴직연금을 공격적으로 투자했다가 손실이라도 나면 비난을 받으니, 최대한 보수적으로 상품을 섞어놓으며 리스크를 피한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에서 이익을 보는 건 가만히 앉아서 운용보수를 챙기는 금융사뿐이다.



퇴직연금 DC형, IRP는 '투자' 계좌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합리한 게임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퇴직연금 계좌(DC, IRP)를 '저금통'이 아닌 '투자계좌'로 인식하는 것이다. 퇴직연금 계좌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면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국가가 허락한 가장 강력한 재테크 수단 중 하나다.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자산에 투자하면 노후에는 강력한 힘이 되는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금융사가 차려놓은 성의 없는 디폴트 메뉴판에 노후를 맡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직접 시장 지수(ETF)를 선택하고, 앞선 글에서 말했던 미국 시장의 장기 수익률(8~10%)에 내 퇴직금을 올라타게 해야 한다. 2~3%의 게으른 수익률과 8%의 복리 수익률이 20년 뒤에 만들어낼 차이는 압도적이다.


퇴직연금은 노동을 하며 내 시간과 맞바꾼 피같은 돈이다. 431조 원이라는 거대한 돈의 산 중에서, 최소한 내 몫의 자산만큼은 깨어 있어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결국 퇴직연금은 내 노후를 당당하게 책임지는 확실한 보상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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