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0%대 수익률 펀드에 다시 갇힌 나의 퇴직연금
2023년 7월, 대한민국 퇴직연금 시장에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다. 도입 명분은 명확했다. 가입자가 퇴직연금에 무관심하여 현금이 방치되는 것을 막고, 별도의 운용지시가 없더라도 자동으로 투자되게끔 유도하여 장기적인 수익률을 제고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이제 더 이상 개인은 DC형과 IRP 계좌에서 현금을 무작정 쌓아둘 수 없게 되었다. 운용되지 않는 현금은 반드시 사전에 지정된 ‘디폴트 옵션’ 상품으로 자동 편입되어 운용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전 지정'의 과정에 있다. 보통 회사의 HR 담당자는 가장 ‘안전한’ 상품을 디폴트 옵션으로 선택하곤 한다. 담당자 본인도 펀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은행원에게 가장 안전한 펀드를 추천받아 등록해 놓을 것이다. 이 펀드를 추천하는 은행원도 가장 안전한 상품을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서 예금에 있던 퇴직연금은 다시 한번 '가장 안전한 예금 수준의 디폴트 옵션 펀드'로 설정된다.
퇴직금 손실에 대한 책임과 리스크를 HR 담당자가 감당하기 어렵기에, 원금이 보장되거나 예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저수익 상품을 고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인사팀 담당자가 고른 ‘가장 보수적인’ 예금 수준의 상품에 나의 소중한 노후 자금이 맡겨지는 꼴이다. 현금 방치를 막겠다는 취지와 달리, 우리의 퇴직금은 다시 한번 '낮은 수익률'이라는 울타리에 갇히게 된 셈이다.
더욱이 증권사 또한 디폴트 옵션 상품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미 제도는 의무화되었고, 가입자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옵션 안에서 자금을 굴려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사는 펀드를 운용하며 발생하는 운용보수를 비롯해 각종 수수료라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한 영원히 수수료 수익이 들어오는 시스템이 완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모 은행의 디폴트 펀드는 다른 운용사의 TDF(타겟데이트펀드)를 50%, 30%, 20% 섞어놓은 것이 전부다. 소위 '재간접 펀드'라는 명목하에 남이 만든 상품을 다시 포장해서 파는 셈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 디폴트 옵션의 수익률은 정체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발생하는 기회비용과 낮은 성적표는 오롯이 직장인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지금 당장 퇴직연금 사업자(은행이나 증권사) 앱을 켜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설정되어 있던 디폴트 옵션 펀드와 현금성 자산(예금)을 전부 ‘매도’하는 것이다. 아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자산은 낮은 금리의 예금이나 성의 없는 디폴트 펀드에 골고루 흩어져 있을 것이다.
이것들을 모두 매도하여 현금(예수금) 상태로 되돌려 놓도록 하자. 매도 후 계좌에 현금이 찍히기까지 2~3일의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그것이 금융사가 설계한 게으른 시스템에서 내 노후 자금을 탈출시키는 첫걸음이다.
확보된 현금을 바탕으로 이제는 내가 직접 공부하고 선택한,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수 있는 자산을 골라 채워 넣으면 된다. 남이 짜놓은 판에서 들러리를 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돈의 진짜 주인이 되어 직접 투자를 시작할 준비를 마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