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게 죄는 아니잖아요

일이 나를 정의하던 시절은 지나고

by 진인철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일로 존재를 증명하던 사람’이었다.
미국 사설연구소와 한국 제약회사의 합작 법인에서 사업개발 임원으로 일하며 회의, 접대, 출장이 일상이었다.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 같았고, 매출 그래프가 오를수록 내 존재감도 커졌다. 명함 하나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마주 앉아 나직이 물었다.

“여보, 이제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안정된 삶을 살고는 있지만… 우리,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딸의 교육 문제도 그렇고… 우리 삶의 다음은 뭘까?”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 당신이 결정하면, 나와 아이는 따라갈게. 우리 함께 다시 시작해보자.”


그 대화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접한 뒤, 몇 차례 방문으로 가능성을 확인하고 가족과 함께 이주를 결정했다. 일본어도 못했고, 문화와 행정은 낯설었다. 주택 계약에서 사무실 마련, 반품 절차, 비자 갱신, 회계·세무까지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그래도 가족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으려 묵묵히 감당했다.


지금은 일본에서 작은 온라인 법인을 운영하며 일본 상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화려한 회의도, 빈번한 출장도 없다. 카카오톡 친구가 천 명이 넘던 시절에서 지금은 그 숫자가 1/10로 줄었고, 인생 곡선도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대니얼 레빈슨은 중년 이후를 “삶의 구조를 재검토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을 내려놓고 삶을 재조립하는 시간. 예전엔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말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견뎌왔는가’를 되새기는 사람이 되었다.


낸시 슐로스버그는 이를 “역할의 변화”를 넘어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직책이나 성과보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의 프레임이 바뀌는 과정이다. 이제 나는 직함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딸을 여기까지 키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카스텐슨의 ‘사회정서적 선택성 이론(SST)’은 지금의 나를 잘 설명한다. 시간의 유한성을 자각할수록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 젊을 때는 인맥을 넓히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깊은 관계를 선택한다. 예전엔 수많은 고객과의 회의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딸과의 저녁 식사, 아내와의 산책이 내 인생의 ‘VIP 미팅’이다.


물론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놓아버린 것이 너무 많지는 않았을까?’
‘더 큰 성취를 할 수도 있었는데 포기한 건 아닐까?’


그럴 때 마음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괜찮아. 그렇게 살아낸 것도 대단한 거야.”


한때는 외국계 회사의 명함을 자랑스럽게 꺼내 들던 내가, 이젠 이렇게 말한다.

“자그마한 구멍가게...는 아니고, 작은 법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말 안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식은땀, 그리고 조용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화려한 성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 더 값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오늘도 작은 사무실에서 낯선 나라의 법규와 씨름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낸 한 사람이다.

어쩌면 삶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에 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로 나를 증명하던 시절이 지나자, 비로소 ‘일’ 너머의 나를 볼 수 있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성취보다 지속이, 이름보다 관계가, 속도보다 방향이 더 소중해진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삶은 비로소 나에게 맞춰진 옷처럼 편안해진다.


✨이 글은 《나이 먹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의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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