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중용

극단에서 벗어나 균형으로 걸어가는 길

by 진인철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무언가를 꼭 움켜쥔 채로 사는 경우가 많다.
상처, 분노, 후회, 미련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은 마치 손바닥 속의 작은 돌처럼 무겁고 거칠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들을 놓아버리면 내가 약해 보일까 두렵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감정들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라고 착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극단으로 끌고 가는 힘이 된다.
분노, 상처, 원망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한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중용이란 어느 한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내면의 균형을 지키려는 태도인데,
이 감정들은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적이다.


그래서 용서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극단으로 기울게 하는 힘을 끊어내는 작업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중용은 결코 유지될 수 없다.


중용은 가득 찬 그릇이 아니라,
적절한 여백과 간극을 유지하는 상태다.
그런데 미움, 후회, 질투, 죄책감 같은 감정은
그 여백을 가득 메워버린다.


마음속 공간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고,
타인의 입장을 받아들일 여유도 사라진다.
용서는 그 공간을 다시 비워주는 일이다.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무거운 돌덩이를 하나씩 꺼내어 내려놓고,
그 자리에 바람이 드나들고 빛이 들어오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공간이 비워져야만 우리는 중심을 지킬 수 있고,
타인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중용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묻는 삶이다.
하지만 과거의 응어리에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온전히 반응할 수 없다.
과거의 상처와 분노에 사로잡힌 채 하는 반응은
대부분 왜곡되고 불필요하게 날카롭다.


용서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고,
그 자유로움이 있어야만 우리는 현재에 맞는
온전한 응답을 할 수 있다.
응답 없는 중용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용서 없는 응답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결국 용서와 중용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중용은 평형을 지키는 기술이고,
용서는 그 평형을 가능하게 하는 해방이다.
붙들고 있으면 무겁지만, 놓아주면 가벼워진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균형 잡힌 걸음으로,
중용의 길 위에서,
그리고 더 넓은 사랑을 향해.


#용서 #중용 #내면의평형 #마음의균형 #내려놓음 #자유 #삶의태도 #성찰에세이

작가의 이전글<의식하지 않는 용기> - 비교와 자랑을 내려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