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돔이 아니다> - 일상의 틈에서 만난 생각들

빨간색은 정말 빨간색일까?

by 진인철

대학교 1학년 어느 날, 도서관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문득 안경 렌즈를 바라보았다. 투명하다 여겼던 렌즈가 빛의 각도에 따라 은근한 색을 띠는 것을 본 순간, 낯선 상상이 시작되었다.


‘이 렌즈에 노란색을 칠하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는 세상도 어떤 인식의 안경 때문은 아닐까?’


그 단순한 상상은 점점 깊어졌다. 혹시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빨강”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 감각의 질감은 각자 다를지도 모른다.


색은 바깥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눈은 빛을 받아들이는 창이지만, 보는 것은 결국 뇌다. 눈은 단지 빛의 파장을 수집하고, 뇌가 그것을 경험으로 번역한다. 물리학은 말한다. “색은 없다. 오직 빛의 파장만 있을 뿐이다.”


즉, 빨간색이라는 감각은 외부에 있는 실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해석하여 만들어낸 경험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내가 보는 빨강과 당신이 보는 빨강은 정말 같은 것일까?”


퀄리아와 철학적 외로움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이게 빨강이야”라고 가르쳐준 대로 받아들인다. 언어와 감각은 그렇게 연결되고, 사회는 그 공통 코드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퀄리아(qualia), 즉 주관적 체험의 질이 숨어 있다. 나의 ‘빨강’은 단 한 번도 타인에게 보여질 수 없다. 당신도 내 색을 볼 수 없고, 나는 당신의 색을 느낄 수 없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 같은 하늘을 본다 해도, 정작 그 안의 색은 각자의 안경을 통과한 고유한 세계다. 그것은 일종의 철학적 외로움이다.


착각이 주는 믿음


플라톤은 말한다. 우리는 실재가 아니라 그림자를 본다고.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그 그림자 속에서도 나만의 색을 만들고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는다. 언제나 감각, 언어, 기억, 맥락을 통해서 본다. 결국 내가 경험하는 세계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의 결과다.


세상은 파랗지만, 내가 낀 안경이 빨갛다면 그 세계는 언제나 붉게 보인다. 그 안경은 다름 아닌 ‘나’라는 존재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색을 본다”고 믿는다. 서로의 안경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같은 단어를 쓰고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착각이 우리를 연결해주는 가장 섬세한 믿음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하늘은 돔이 아니다 – 일상의 틈에서 만난 생각들>의 연재글입니다.

일상의 작은 의문이, 우리가 보는 세계의 본질을 새롭게 비춰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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