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인식과 순수 인식의 가능성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지만, ‘내가 있다’라는 것과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과연 같은 말일까.
존재한다는 것은 숨 쉬고, 세상 속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러나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은, 나라는 존재를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아기를 보면 이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아기는 분명 존재하지만, 자신이 ‘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빛이 보이면 보고, 소리가 들리면 듣고, 촉감이 닿으면 느낄 뿐이다. 그 안에는 개념도, 이름도 없다. 뇌 속에서 ‘나’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회로가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의 시간은 ‘내가 있다’가 아니라, 오직 ‘있음’ 그 자체로 흘러간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우리 뇌에서 ‘나’를 설명하는 회로가 가장 먼저 꺼진다. 만약 죽음 이후에도 어떤 형태의 의식이 남는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모든 해석을 벗어버린 순수한 ‘있음’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복잡한 경로를 거친다. 눈에 들어온 빛은 망막을 지나 전기 신호로 바뀌고, 귀로 들어온 소리는 고막과 달팽이관을 거쳐 진동의 패턴이 된다. 피부에서 느낀 감촉은 신경을 타고 올라와 뇌에 도착한다. 이 모든 감각은 뇌 속에서 조각처럼 흩어진 채 들어와, 과거의 기억과 언어, 경험과 연결되며 하나의 ‘그림’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에 이름을 붙인다.
“이건 나무다.”
“이건 음악이다.”
“이건 행복이다.”
그렇게 우리는 완성된 이미지를 보며 ‘이것이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세상은 이미 뇌의 해석을 거친 후의 모습이 되어 있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고 ‘저게 나다’라고 믿는 것처럼.
하지만 거울이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간의 해석 과정이 사라지고, 빛은 그저 빛으로, 소리는 그저 소리로 다가온다. 이름 붙이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보게 될 세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설명되지 않은 세상, 변형되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울로 보는 것”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으로 옮겨가는 순간일 것이다. 우리의 모든 설명이 멈추고, 그 자리에 순수한 ‘있음’만이 남을 때, 우리는 비로소 거울 너머의 세계와 직접 대면하게 된다.
✨삶의 끝에 남는 것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있음’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거울이 아니라, 완전한 세상과, 그리고 존재의 근원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순수인식 #존재와인식 #거울과대면 #죽음과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