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밖으로 향할 때
2018년 여름의 기억이다. 홋카이도 시미즈라는 작은 시골 마을, 그곳의 선교지를 방문하던 중 만난 한 사람의 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분은 40대 후반의 여성 선교사님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마을의 환경, 외로운 지리적 위치, 반복되는 일상. 누구라도 지치기 쉬운 조건이었지만, 그분은 놀라우리만큼 생기 있고 환한 웃음을 지니고 계셨다. 그 웃음은 억지로 지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웠고, 말투는 유쾌하고 위트 있었으며, 대화 중간 중간 터지는 웃음소리에는 삶의 고단함을 이긴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깊은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의문이 있었다. 이분은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걸까. 미혼이라는 사회적 시선, 도시의 편의나 문화로부터 떨어진 환경, 늘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일상. 이런 외적인 조건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웃음을 잃기 쉬운 상황 아닌가. 며칠 동안 그분과 시간을 보내며 말없이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조용한 확신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분은 거의 모든 관심을 타인에게 쏟고 있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말의 방향도, 걱정의 무게도, 하루의 리듬도 모두 다른 사람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분이 웃고 있는 이유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삶’ 때문은 아닐까. 그와는 다르게, 우리는 너무 자주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기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서도 오히려 그 안에서 길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삶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고정될수록 세상은 협소해지고, 타인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내면은 더 불안정해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쩌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인간이 가장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욕구충족이나 생존이 아니라 ‘의미’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한 “자기초월”이란,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잊을 만큼 더 큰 의미나 존재에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프랭클은 인간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 순간은 자기 자신을 ‘목표’로 삼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떤 대의나 사람에게 ‘수단’처럼 내어놓을 때라고 말한다.
행복은 직접 추구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잊고 어떤 의미에 몰입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라고 그는 믿었다. 시미즈의 선교사님은 그런 의미에서, 삶의 본질을 꿰뚫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계셨던 것 같다. 그 웃음은 결코 환경 때문이 아니었고, 그분이 속한 사역이나 역할 때문도 아니었다. 그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이들을 향해 열려 있었고, 그 열린 삶의 구조 안에서 기쁨이라는 감정이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이다.
에리히 프롬 역시 비슷한 통찰을 전한다. 그는 현대사회를 진단하며 우리가 점점 ‘존재’보다는 ‘소유’에 매달리는 구조 속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자기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처럼 삶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면, 내면은 점점 고립되고 관계는 얕아진다. 에리히 프롬이 지적했듯, 소유와 비교 중심의 삶은 결국 인간을 ‘존재의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다.프롬은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힘이며, 그 초월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연결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두 사상가의 사유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깊이 주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내어줄 때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충만감이 찾아온다는 것을. 삶은 역설처럼 보인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할수록 행복은 멀어지고, 자기 자신을 잊을수록 존재는 깊어지고, 웃음은 깊은곳 에서 피어난다.
시미즈에서 만난 그분의 웃음은, 무엇을 더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았기 때문이었고, 자기를 잃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넓은 자기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삶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 돌이켜보아야 할 질문은 "나는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마음을 쓰고 있는가"일 것이다. 그 마음의 방향이 우리를 닫히게도 하고, 열리게도 하며, 가볍게도 하고, 단단하게도 만든다. 그 선교사님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며, 지금 나는 내 안의 거울을 타인에게로 조금씩 돌려보고 있다.
✨ 행복은 결국, 나를 중심에 둘 때가 아니라 나를 잠시 잊고 누구가를 바라볼때, 조용히 스며드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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