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돔이 아니다> - 일상의 틈에서 만난 생각들

나는 나를 다 알지 못한다

by 진인철

나는 걷고 있지만, 걷는 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목적지가 머릿속에 있을 뿐이고, 나는 다리에게 ‘가자’는 의도만 주었을 뿐인데, 어느새 두 다리는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장애물도 적당히 피하고, 속도도 조절한다. 나는 다리를 믿고 맡긴다.


이건 꽤 놀라운 일이다. 내가 직접 계산한 것도 아니고, 근육을 일일이 의식하며 움직인 것도 아닌데—몸은 마치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이건 걷기만이 아니다. 밥을 먹으면 위장은 알아서 소화액을 분비하고, 심장은 스스로 박동하며, 폐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공기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지금 이 문장을 타자로 치고 있는 순간에도, 어떤 손가락이 어느 키를 눌러야 하는지를 나는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 알고 있는 건 오직 ‘쓰고 싶다’는 생각뿐인데, 손가락은 이미 그 의도를 앞서 알아차리고 반응한다.


우리는 흔히 ‘나’를 하나의 완결된 주체처럼 여긴다.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며, 몸으로 실행하는 통합된 자아.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착각임을 알게 된다. ‘나’는 전체가 아니라, 복잡하게 분화된 흐름들 중 극히 일부분만을 인식할 뿐이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를 두 가지 체계로 구분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무의식적 사고, 이른바 시스템 1이고, 다른 하나는 느리고 분석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2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라고 믿는 자아는 대부분 이 두 번째 체계, 즉 의식적인 사고에 기반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 대부분은 첫 번째 체계—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흐름—에 의해 좌우된다. 걷겠다는 의도만 떠올려도 수많은 신경과 근육이 이미 자율적으로 협응하고 있으며, 타자 역시 의식은 문장을 그리지만 손가락은 자율적으로 춤을 춘다. 우리의 장기, 신경계, 감정 반응은 이 무의식적 체계 속에서 작동하며, 의식은 그 결과를 뒤늦게 해석할 뿐이다.


벤저민 리벳의 실험은 이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기 전’ 이미 뇌의 준비전위가 먼저 발화한다는 것이다. 즉, 의식은 ‘결정자’라기보다 ‘해석자’일 수 있다는 통찰이다.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이를 뇌 좌반구의 ‘해석자(interpreter)’라 부르며, 무의식적 과정의 결과를 ‘내가 했다’고 의미화함으로써 자아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는 무의식이 먼저 결정을 내리고, 의식은 그 선택에 그럴듯한 논리를 덧붙여 정당화하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자의식은 수많은 무의식적 흐름 위에 떠 있는 작은 부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부표는 바다 전체를 자신이라 착각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바로 그 착각 덕분에 우리는 자아의 연속성과 책임감을 유지한다. 내가 전부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모든 걸 내가 홀로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은 내가 온전히 설계하고 주관하는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내 안에 세팅된 수많은 자동 반응과 작은 의지가 함께 빚어내는 협연이다. 나는 그 협연 속에서 단지 일부를 담당할 뿐이지만, 그 일부만으로도 충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


✨ 나는 나의 전부가 아니어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글은 <하늘은 돔이 아니다 – 일상의 틈에서 만난 생각들>의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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