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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지 Nov 08. 2022

앙꼬는 어떤 병에 걸릴까?

몹쓸 직업병


그 나이가 되면 그들의 개인 이력이란 의학적 이력과 똑같은 것이 되었으며, 의학적 정보 교환이 다른 모든 일을 밀쳐냈다. 거의 작업실에서도 그들은 그림보다는 병으로 서로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당은 어떤가요?” “혈압은 어때요?” “의사는 뭐래요?” “내 이웃 얘기는 들었나요? 간으로 퍼졌다는군요.”

                 필립 로스, <에브리맨> 중에서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은 질병으로 한 사람의 생을 돌아보는 소설이다. 마지막까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공의 장례식에서 책은 시작되고, 병력을 둘러싼 기억을 따라 그의 삶을 엿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탈장 수술을 했고, 30대에는 충수염과 복막염을 앓았다. 이어서 신장동맥 스텐트 삽입, 좌측 경동맥 스텐트 시술이 있었고, 그 뒤로로 스텐트 삽입과 제세동기 삽입이 계속됐다. 그리고 71세에 우측 경동맥 폐색 수술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질병에 병행하는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서늘함이 느껴지지만, 책 제목처럼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의 병력을 따라가면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을까?


동물병원의 대기실 풍경도 다르지 않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보호자들은 반려동물을 매개로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묻고 답하고,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을 경우 동질감을 느끼며, 질병에 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 집 개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개를 보면 미안하지만 속으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장례 박스를 들고 나가는 보호자를 보면 남일 같지 않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손을 잘 주는지, 공을 잘 물어오고, 얼마나 온순한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보다 어디가 아픈지가 우선 순위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반려동물은 대체 어디가 아플까? 그 작고 귀여운 몸에 그렇게 많은 병이 생길 수 있을까?


보통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의 차트를 보고 그간 어떤 질병으로 진료를 받았는지 확인한다. 나이에 비례하여 질병이 늘어나는 건 동물도 마찬가지지만, <에브리맨>의 주인공처럼 긴 질병 이력을 가진 동물도 생각보다 많다. 얼마 전에 온 환자는 비틀거리는 보행을 보이고 경추 통증 호소가 있어 MRI를 찍고 나서 약물 치료 가능한 경추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약을 거의 끊어갈 때쯤 심하게 뛰어놀다가 편측 대퇴골두가 탈구되었고, 환납을 했으나 다시 빠졌다. 대퇴골두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으나 이틀 전에 먹은 간식으로 인해 췌장에 염증이 생겨 구토, 설사를 보여서 수술 전에 췌장염 관련 입원 치료를 먼저 받기로 했다. 분리 불안으로 입원 스트레스가 심해 보호자가 안정을 위해 집에서 쓰던 담요를 가져와서 입원장에 넣어주었더니 수술 당일 아침 담요의 일부를 뜯어먹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여러 개의 담요 조각이 무사히 장을 통과할지 알 수 없었고, 장을 막을 경우 개복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보호자와 상의 후 수술 전에 내시경을 진행했고, 위 내의 담요 조각을 제거한 뒤 드디어 다리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상기의 경과는 두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며 그의 나이는 이제 6살이다.


동물병원에서 50% 혹은 그 이상을 차치하는 증상은 구토, 설사다. 주로 식생활과 관련이 있는데, 이물의 비율도 꽤 높은 편이다. 별걸 다 먹는다. 장난감, 커튼 묶는 끈, 속옷, 장판 등등. ‘땅콩 회항’이라 불리는 사건이 터졌을 때는 (정확히는) 마카다미아라는 견과류를 사람들이 호기심에 많이 먹었던 모양이다. 보호자와 사이좋게 나눠 먹고서, 또는 개가 단독으로 훔쳐먹고서 구토와 기력 저하로 병원에 내원한 경우가 생겨났다. 그전까지는 마카다미아 중독 환자를 본 적이 없었다. 급히 독성학 책을 찾아보고 진료를 본 기억이 난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새롭게 등장한 이물은 마스크 끈이다. 고양이가 선호하는 이물이다. 마스크 끈이 수십 개 없어졌다며 마스크를 숨기는 게 일이라는 보호자도 있었다. 사회적 사건이 반려동물의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현상은 그만큼 우리의 생활이 반려동물과 밀접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구토, 설사의 원인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췌장염이다. 비만하고, 사람 음식이나 기름진 간식을 많이 먹는 경우 발생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 고기 파티를 하는 날 발치에서 하나씩 얻어먹다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췌장염은 정도에 따라 증상이 천양지차다. 심한 췌장염으로 담관이 막혀 한 달 이상 입원한 경우도 있다. 고양이도 췌장염, 간담도염, 장염이 복합적으로 오는 경우가 있고, 개와 마찬가지로 힘겨운 치료 과정이 필요하다. 앙꼬가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질환 리스트에 췌장염이 있을 정도다.


소형 견종의 심장 질환은 이제 보호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만큼 많은 개들이 앓고 있는 것이다. 보통 판막의 변성으로 인해 왼쪽 심장에 부하가 생기면서 폐에 물이 차고, 호흡 곤란이 발생하게 된다. 이뇨제를 사용하여 폐에 찬 물을 제거해주면 호흡이 편해지지만,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 약은 증상을 조절하는 데 효과가 있지 심장병 치료제가 아니기에 점점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약의 효력보다 질병의 진행이 빠르면 다시 폐에 물이 차기도 한다. 말기 심부전 환자는 하루 세 번씩 약을 먹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폐에 물이 차서 입퇴원을 반복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신장 질환은 대부분 있다고 봐야하고, 경련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종양 환자도 상당히 많다. 피부종양에서부터 뇌종양까지 다양하다. 혈관이 막히는 경우도 고양이 심장 질환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 밖에도 전공서적을 찾아보면 겨우 몇 줄 언급되어 있는 질환들이 확인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람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질환이 반려동물에서도 유사하게 보인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수의학 전공서적의 책 표지는 귀엽다.



‘앙꼬는 어떤 질병으로 아플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다양하게 아픈 동물들을 보면 그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러다 보니 ‘제발 이건 안 걸리면 좋겠다’ 싶은 질병들이 생겼다. 예전부터 ‘이건 절대 안 돼’ 싶은 첫 번째 병은 당뇨병이었다. 앙꼬가 뚱뚱한 편이라 7살을 넘으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사실 당뇨병이 첫 번째인 이유는 나의 사정 때문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보통 하루 두 번 인슐린 주사 해야 하는데, 되도록 같은 시간에 주사를 해야 한다. 나같이 혼자 사는 사람에게 매일 같은 시간에 주사를 줘야 한다는 건 다른 일정은 대부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신장 질환인데, 노령 고양이에게 대부분 다 있다고 봐야 한다. 말기 신부전으로 상태가 안 좋은 아이들을 많이 봤기에 두려움이 컸으나 최근에는 문제가 생긴 후에 대응하기보다는 미리 조심하면서 관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는 두려움을 조금 덜었다.그 다음은 췌장염, 간담도염, 장염이다. 보통 세 가지 질환이 병발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역시 비만과 관련이 있다(이쯤 되면 대체 왜 살을 안 뺐냐고 궁금해하겠지만, 정말 사료만 주는데 안 빠진다. 체중이 유지되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그 다음에는 종양인데…. 블라블라…. 쓰기 전에는 이건 아니었으면 하는 리스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그냥 안 아프기를 바라는 것 같다.


가끔은 두렵다. 앙꼬가 아파서 입원을 하면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내가 직접 돌볼 수 있을까? 무기력하게 엎드려 밥을 거부하고, 계속 토하고, 화장실 갈 힘이 없어서 앉아서 소변을 봐 엉덩이가 오줌으로 젖어 있는 모습을 내가 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힘들다. 보호자들은 가까이서 돌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속 사정은 다를 수 있다. 모르는 고양이가 토하는 모습만 봐도 고통스러운데 앙꼬가 그런다면 어떨까, 다른 진료에는 지장이 없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앙꼬가 입원한 장 앞에서 턱을 괴고 앉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친구네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돌보는 게 더 낫겠지 싶은 마음이 든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어리석은 일을 언제까지 계속하게 될까? 눈 앞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앙꼬를 보니 이런 상상을 하는 내가 미련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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