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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지 Nov 05. 2022

첫 고양이의 마지막 스케일링

그 선택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고양이 키우던 보호자들은 고양이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해야 했다. 그만큼 고양이는 수의사에게도 낯선 동물이었다. 인턴 2년 차인 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가끔 만나는 고양이들도 사회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야생에 가까운 고양이를 만나는 날이면 놓치면 큰일 난다는 각오로 임했다. 그 정도로 고양이는 무섭고 낯선 존재였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선배들은 고양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했다. ‘고양이를 알기 위해서 키워봐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중 새끼 고양이들을 만났다. 선배 집 앞에서 어미 없이 목 놓아 울던 어린 고양이들을 지나칠 수 없어 모두 데려온 것이었다.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선배에게 한 마리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반려동물 입양에는 선택의 순간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펫숍에서든, 유기동물센터에서든, 아니면 지인을 통하든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를 콕 찍어야 하는 것이다. 내 삶의 긴 시간을 함께할 반려동물을 선택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별 생각 없이 선택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엄마 고양이를 만나볼 수도 없고 개인 면접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눈으로 보고 나의 느낌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색깔도 다양했고, 암수도 섞여 있었다. 유심히 보고 있는데 그런 나를 보며 유독 하악질을 하며 경계하는 노란색 줄무늬 고양이가 있었다. 마치 “저요, 저요”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왜 그랬을까 싶지만, 사나운 고양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거나, 또는 교만하게도 내가 교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든가, 아니면 운명이었다. 작명을 잘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앙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나에게 첫 고양이가 생겼다.  

입양 한달째



그 뒤로 16년이라는 세월동안 앙꼬와 함께했다. 가끔 헤어볼을 토하는 경우 말고는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그사이 사료를 소화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고 간식을 끊긴 했다. 한 살씩 많아질 때마다 ‘이제 어디 아플 때가 된 것 같은데’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검진을 했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열 살이 넘어서자 아프지 않아도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영양제를 먹였다. 때때로 먹인 영양제 덕분인지, 아님 내가 수의사여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건강 체질인 건지 그 뒤로도 큰 병은 없었다.  


앙꼬는 제한 급식을 한다. 살이 찌는 것 같아서 몇 년 전부터 조절해서 주고 있다. 비만 고양이는 당뇨, 췌장염, 지방간의 위험성이 높고, 힘든 치료 과정을 자주 지켜봤기에 7kg를 넘기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아침, 저녁 밥을 주면 대략 하루에 얼마나 먹는지 파악할 수 있다. 다음 끼니를 줄 때에는 대부분 그릇이 비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료가 그대로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으니까 생각하고 하루를 기다렸는데, 또 남아 있었다. 잘 돌아다니고, 울기도 하는데 밥이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물도 많이 먹는 것 같았다. 몇 가지 질환들이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체중을 쟀더니 당연하게 빠져 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 어느 날 문득 ‘이상하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연인의 변심이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느껴지듯이 반려동물의 질병도 아주 초기의 어떤 순간들이 있다. ‘이상하다.’ ‘저럴 애가 아닌데 왜 그러지?’ 빠르게 그 순간을 잡아내는 보호자들은 오히려 병원에서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빠른 대응으로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기도 한다. 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긴 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진행되기도 한다.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너무 늦게 왔나요?“이기도 하다. 이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보호자는 전문 지식이 없어서 몰랐다면, 수의사의 반려동물은 ‘너무 늦게’ 병원에 오는 일이 없을까?


초등학교 시절 키우던 강낭콩의 관찰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앙꼬를 살폈다. 컨디션은 양호했고, 캔 사료를 줬더니 잘 먹었다. 식욕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입 안을 살폈다. 오랜만에 들여다본 이빨에는 치석이 많았고, 잇몸에 염증이 생겨 빨갛게 부어 있었다. 이빨과 잇몸이 아파서 못 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 기회에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받아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앙꼬는 현관 문만 나오면 정말 크게 운다. 목소리도 허스키하고 우는 소리도 좀 독특한데, 나가면 목청을 높여 쉬지 않고 울어댄다. 장거리 이사를 할 때도 나름 준비를 단단히 했었다. 전날부터 진정제를 먹였고, 출발 직전에도 먹였다.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하는 대이동이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친구에게 운전도 부탁했다. 진정제는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차 안에서 세 시간을 내리 울다가 케이지를 탈출했다. 차 안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두려움에 가득 차서 내내 울었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앙꼬를 데리고 병원을 가려니 덜컥 겁이 났다. 일단 약을 먹여보고 그래도 해소가 안 되면 병원에 데려가야지 싶었다. 치주염 약을 지어왔고, 열심히 먹였다. 다행히 염증이 가라앉았고 다시 건사료도 먹기 시작했다. 경쾌하게 ‘까드득’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씹는 시늉이라도 했다. 매일 등을 쓰다듬으면서 살이 빠지는지 체크하고, 사료의 양이 얼마나 줄었는지도 더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요새 앙꼬가 식탁에서 뛰어내리지 않는구나. 그럴 때마다 파이가 짖곤 했는데, 그러고 보니 새벽에 파이가 짖지 않는구나. 파이가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앙꼬가 식탁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는 거였다. 전공 서적에서 노령 고양이에게 퇴행성 관절염이 많다고 읽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진료는 많지 않아서 간과하고 있었다. 영양제가 하나 더 늘었다. 그 덕에 아침에 주방 수납장을 열면 앙꼬는 부리나케 도망을 간다.


요새도 가끔 입 안을 들여다본다. 켜켜이 쌓인 치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 스케일링을 해야지’ 하고 체념하듯 다짐해본다. 마지막 스케일링이 열두 살 정도였다. 이를 닦는 데 협조를 하지 않으니 치석이 다시 쌓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같이 근무하는 치과 담당 선생님께 “앙꼬 스케일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16살인데 괜찮겠죠?”라고 물었더니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이든 동물의 마취나 수술은 늘 수의사를 긴장하게 한다. 그리고 “괜찮겠죠?”는 수의사 입장에서 꽤 무서운 질문이다. 나도 저 질문을 받으면 장황하게 안 괜찮을 수도 있음에 대해 설명을 하곤 했는데, 입장이 달라지면 별 수 없는 모양이다.


‘나중을 위해서 지금 스케일링을 해야 한다’라는 생각과 ‘지금 괜찮아졌으니 다시 문제가 되면 하자’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수의사는 명쾌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는 게 병이라고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병원에서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보호자를 자주 만난다. 많이 아픈 경우라면 선택은 오히려 쉽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 지금 스트레스가 될지 모르는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호자들을 보면 이런 경우 선택의 비율은 반반 정도이다. 담담하게 할 일을 하듯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주저하다가 결국 돌아서기도 한다.


나는 어느덧 마흔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몸 여기저기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처음 눈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며칠 내 실명할 사람처럼 좌절감에 빠졌다. 그동안 건강 관리에 소홀했던 것을 자책하며 두려워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애써서 챙기고, 개선에 필요한 새로운 습관을 들인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악화되지 않았고, 불안감도 낮아졌다. 요새도 매일 안약을 넣긴 하지만, 이 질환은 내 인생의 동반자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에게 질병이 생겼을 때 어떤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 아플 수 없는 일이고, 그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적절한 시기에 병원에 도착해서 큰 고민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외국 유명 배우처럼 암을 예방하기 위해 몸의 일부를 미리 절제할 수도, 아니면 차일피일 미루다 손쓸 수 없이 ‘늦게’ 병원에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늦게’라는 것은 과연 언제일까. 반대로 무엇이든 ‘일찍’ 발견되기만 한다면 질병은 완전하게 예방 가능한 것일까?


‘늦게’ 발견되는 것보다 ‘일찍’ 발견되는 것이 질병에 이롭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럼 ‘일찍’ 발견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사람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정기 검진을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 억지로라도 검진을 받고 조언을 들으면 아무래도 관리를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조기에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질병은 갑자기 찾아온다.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아도 질병은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 경우 모두가 ‘늦은’ 것일까?


‘일찍’이라는 말은 모든 질병은 예방 가능하다는 우리의 헛된 기대를 반영하는 것 같다. ‘늦게’라는 부사 역시 실제적인 사건이 아니라 감정적인 판단에서 오는 말이 아닐까? 발견이 되었기에 늦은 것이고, 발견되지 않으면 일찍도 아닌 일찍 이전의 일이 되어버리는, 사건 발생 후에 정해지는 일 말이다. 그렇다면 이건 개인의 판단인 것이다. 시간적 순서에 대해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행동에 옮긴 시간이 최선이라고 믿는 것은 필요하다. 죄책감 없이 아프기만 해도 바쁘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은 은유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질병은 신의 저주도 아니고, 심판도 아니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했다.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마음 편히 아플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중에서




질병에 ‘일찍’과 ‘늦게'는 없다. 뻔한 얘기지만(보통 뻔한 곳에 정수가 깃들기 마련 아니던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면서 조기에 예방 가능한 질환들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갑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난 경우는 증상 경중에 따라 상식선에서 합당하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앙꼬는 아직 스케일링을 하지 않았고 적절한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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