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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빼꼼무비 May 12. 202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 리뷰 및 분석

1. '나' 를 잃어버린 사람들


가디언즈 멤버들의 공통점은 바로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피터 퀼은 어려서부터 래배져 내에서 욘두의 보호 아래 좀도둑으로 이용당했었고, 가모라와 네뷸라 역시 타노스의 과업을 위한 인간 병기로써, 맨티스는 에고의 도우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드랙스는 가족을 잃고 복수에 너무 혈안이 된 나머지 되어서 본인을 파괴자(The Destroyer)로 칭한 채 스스로를 가뒀었고, 아담 워록 역시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수하로, 코스모도 러시아의 우주 미션에 희생될뻔한 동물로 이번 작품에 소개됩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본인이 누구인지, 본인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방황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로켓 역시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실험 대상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시종일관 시니컬하고 삐딱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친구들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 자신의 창조주를 향한 분노와 정체성의 혼란이 크게 작용 했을 것입니다. 

그가 평소에 보인 까칠한 성격은 그런 과거에서 비롯된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본인을 해괴망측한 괴짜(Creep)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온 그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용서하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는 과정이 이 작품 전체에 담겨있습니다.  

Lylla: You still have a purpose here
Rocket: A purpose for what? He made us for nothing but just stupid experiments to be thrown away
Lylla: There are the hands that made us, and there are the hands that guide the hands
My beloved Racoon,
the story has been yours all along. You just didn't know it 


"우리를 만든 손길이 있듯, 그들을 인도해주는 손길도 존재하는 법이야. 
사랑하는 내 너구리야, 이때까지 전부 너의 이야기였어. 그저 네가 몰랐을 뿐이야"


끝없는 자기혐오로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 하이 레볼루셔너리와 대조적으로 로켓은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자기혐오를 멈추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라일라가 그랬듯 비로소 본인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생명들의 구원의 손길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노웨어라는 방주를 이용해 21세기판 스페이스 노아로 거듭나게 된 것이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인물은 비단 로켓 뿐만이 아닙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퀼은 자신의 뿌리를 되찾기 위해 미주리로 떠나고, 맨티스 역시 본인이 진정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납니다. 드랙스는 파괴자가 아닌 따뜻한 아버지로써, 네뷸라는 전쟁 기계가 아닌 노웨어를 이끄는 지도자로써, 그리고 코스모와 아담은 가디언즈로써의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게 됩니다. 


이토록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부작은 그런 이들이 한 팀을 이루고 가족을 이뤄 서로에게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찾아주고, 깊은 상처를 치유해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가디언즈 멤버들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생명들까지 정체성을 찾아주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죠. 



어쩌면 시종일관"나는 그루트다"만을 연발하는 그루트가 가장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가장 주인의식이 뚜렷한 캐릭터일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따뜻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졌으며, 그 영혼이 가디언즈 전원을 말랑말랑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요. 




2.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


모든 생명체가 하등하고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그가 생각하는 단점은 모두 제거하고 장점만 살린, 높은 지능을 가진 신인류를 창조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대의를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실험의 산물중 일부에 불과한 89P13, 로켓은 창조주도 해결하지 못했던 실험체에서 폭력성을 제거하는 데에 성공하는데, 이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이성을 완전히 잃게끔 합니다. 본인의 창조물이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한 데에서 엄청난 자괴감을 느낀 것이죠. 

몇 십년 후 그는 로켓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욕심으로 본인의 수하들은 물론 삶의 터전과도 같은 우주선을 전부 잃고 드디어 자신의 창조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가디언즈는 그를 무력화시킨 후 그의 악행 만큼이나 끔찍한 민낯을 확인하게 되는데, 모든걸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다던 그에게 로켓은 이런 말을 합니다. "넌 모두의 있는 그대로를 혐오했지"(You just hated things the way they are).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로켓은 시리즈 내내 그를 설치류, 혹은 동물로 취급하는 모두에게 유난히 불같이 화를 내곤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난 너구리가 아니라는 대사를 퀼과 라일라에게 두 번씩이나 했지만,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기로 결심한 로켓은 스스로를 비로소 "로켓 라쿤"이라 부를 수 있게 되며 자신을 괴롭힌 창조주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립니다. 



스타로드 역시 죽은 가모라를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와 사랑을 했던 가모라와 래배져가 된 새로운 가모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미션을 함께하는 내내 갈등을 빚게 되죠.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퀼은 그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Gamora: You know I'm still not who you want me to be.
Quill: I know. But who you are ain't so bad
Gamora: I bet we were fun.
Quill: Like you wouldn't believe it.


피터: 근데 지금 있는 그대로도 나쁘진 않네.
가모라: 재밌었을 것 같아 우리.
피터: 넌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애초에 영웅적인 면모보단 어딘가 덜 떨어져 보이는 불완전한 인물들로 결성된, 특이하면서 특별한 히어로 집단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단점은 보듬어주며 서로가 가진 선한 영향력으로 그 단점마저 메꿔주는 이 요상한 히어로들을 통해 제임스 건은 이 세상에 본인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듯 합니다. 




3. 두번째 기회


제임스 건은 기사회생, 전화위복의 아이콘과도 같은 제작자입니다. 2018년 7월 20일, 그가 10여년 전 게시했던 논란의 여지가 가득한 몇몇 트윗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디즈니는 제임스 건을 해고하게 됩니다. 세번째 가디언즈 작품의 각본 집필을 완료했음에도 그 각본마저 쓰지 않겠다며 꽤나 단호하게 제임스 건을 손절하고자 했던 디즈니는 놀랍게도 약 1년 후 그를 다시 복직시키게 되는데요. 



그 뒤에는 가디언즈에 출연한 배우들의 서명 운동, 그리고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성격이 시원시원하기로 유명한 데이브 바티스타는 그가 없으면 드랙스를 다시 연기하지 않겠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힐 정도로 얼마나 감독과 배우들의 유대감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전 비록 제임스 건이 몇 년 전 올린 부적절한 농담을 지지하진 않지만,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꼭 볼륨 3의 감독으로 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저희 배우진 전원이 서명한 이 입장문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재밌는 것은 8개월간의 공백기 동안 워너/DC는 제임스 건에게 접촉해 그가 원하는 아무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범죄자 집단이 모여 영웅적인 일을 하는 영화로 할리우드 거물이 된 제임스 건 답게 그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를 제작하게 됩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흥행 수익은 저조했지만, 영화 자체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위기의 DC를 잠시 나마 잠재우는 역할을 했었죠. 


<블랙 아담>마저 흥행 참패의 쓴맛을 보면서 워너/DC는 새로운 유니버스를 개척할 리더를 물색하게 되됩니다. 그리고 작년 10월 26일, DC 스튜디오의 새로운 공동 CEO로 제임스 건이 낙점됐다는 소식이 보도됩니다. 건은 기존에 잭 스나이더 감독이 꾸린 세계관을 완전히 새로 갈아 치우고, 캐릭터 중심의 진솔한 이야기를 써나가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슈퍼맨이라는 평가를 받는 헨리 카빌마저 내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왜 나를 구해줬냐는 아담 워록의 질문에 드랙스는 "모두는 두 번째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어(Everybody deserves a second chance)"라는 말을 합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가 드디어 직접적으로 영화에 쓰이게 된 것인데요. 좀도둑, 살인자, 변절자, 현상금 사냥꾼 등 문제가 가득한 위험한 인물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고 세상을 구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인생에서 잘 찾아오지 않는 두 번째 기회에 대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과거에 한 실수로 인해 화려한 커리어를 날릴 뻔한 제임스 건 감독은 그의 능력을 인정 받아 두 번째 기회를 받았음은 물론,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옆동네 DC의 총괄 책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시작한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그의 연출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그는 할리웃의 돌아온 탕아(Prodigal Son)이자 세컨 챈스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마무리 및 총 평


첫 관람때는 확실치 않았으나 회차를 거듭할 수록 뜯어 볼수록 제임스 건이 얼마나 유능한 제작자인지 깨닫게 해주는 포인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인물들에게 적당한 서사와 완벽한 결말을 선사해주고, 전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급의 액션 세트피스, 시각효과, 그리고 또 한번 완벽한 사운드 트랙까지 "제임스 건이 제임스 건 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웠던 작품 같습니다. 

비록 완벽에 가깝다거나 1편을 뛰어 넘는 수준이다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최근 마블 스튜디오의 실망스러웠던 각본들에 비하면 상당히 준수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마블이 있게한 캐릭터 중심의 서사와 감정선이 오랜만에 강조되면서 앞으로 마블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해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한 가지 걱정거리는 크래글린, 아담 워록, 코스모, 파일라가 합류한 새로운 가디언즈 로스터가 생각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다는 점입니다. 새 멤버들이 1세대 멤버들에 비해 개개인의 스토리가 아직 부족해서 인 듯 한데, 제임스 건이 네 번째 작품을 이어서 맡을 확률은 상당히 낮기에 좋은 제작자를 물색해 시리즈의 명성을 부디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이외에도 우리가 또 한번 넘겨야 할 <더 마블스>라는 고비가 있고, 현재 각본가 협회의 파업으로 <블레이드>, <데어데블: 본 어게인> 등 여러 기대작들의 제작에 제동이 걸리면서 여전히 적신호가 가득한 마블 스튜디오. 부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내년 네 번째 캡틴 아메리카 작품 시작으로 네 편의 영화가 모두 예정대로 정상 개봉하여 모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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