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 <원더맨> 리뷰
1. 마블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엔드게임 이후 근 몇년 간 MCU가 필요로 했던건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같은 리더격 캐릭터도 아니고, 화려한 스펙터클도 아닙니다. 바로 한 인간에 대한 진솔하고 개인적인 경험과 성장,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으로부터 빠르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이죠. 그게 바로 마블이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기술이자 특기였고, 페이즈 4와 5의 실패는 바로 그 특기의 부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앤트맨>을 높게 평가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스캇 랭이라는 캐릭터가 히어로가 되는 동기에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을 받아 하늘의 뜻에 따른다거나 대단한 깨우침을 받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위험에 처한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단순한 동기 하나 만으로도 좋은 히어로가 충분히 탄생할 수 있다는걸 마블은 지난 몇년간 망각한 듯 합니다.
2. <원더맨>이 가지는 차별점
<원더맨>은 흔한 히어로의 탄생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한 무명 배우가 스타덤에 오르기까지의 여정, 그 속에서의 우정과 가족애, 그리고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와 통제하기 어려운 신체적 능력 혹은 결함 사이에서 오는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절대 사이먼이 가진 슈퍼 파워로 극 전체가 규정되지 않습니다. 그가 설정상 평범한 인간이었더라도 충분히 좋은 버디 드라마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는 점이 이 드라마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천적인 능력을 지니게 되면서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생계마저 포기하고 시민들에게 친절한 이웃이 되고자 하는 서민형 히어로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숨기고, 부끄러워하며 매일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사실은 더 현실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뮤턴트들, 엑스맨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테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데스틴 크레턴은 자신이 왜 MCU의 다음 챕터인 '뮤턴트 사가'를 이끌어갈 중추적인 인물인지를 증명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에게 다음 스파이더맨 영화를 맡기고, 여기서 엑스맨의 중심 캐릭터 중 하나인 '진 그레이'의 첫 등장을 맡긴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원더맨>이 그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앞으로 MCU를 이끌어갈 감독은?
MCU는 현재 유능한 제작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존 파브로는 스타워즈로 너무나 바쁘고, 라이언 쿠글러 역시 MCU에만 종속되기엔 너무도 아까운 재능을 갖고 있으며 타이카 와이티티는 최근 작품들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소 형제의 복귀는 누군가에겐 극약 처방 혹은 '절실함의 끝' 처험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오랜 팬들의 눈에는 정말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둠스데이와 시크릿워즈 같은 대규모 이벤트를 감당하기엔 루소형제만한 인물들이 없다는건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번 작업이 끝나더라도 마블 스튜디오의 특별 고문 역할을 하며 더 넓은 시야로 앞으로의 MCU를 돌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의 MCU를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우려입니다. 그 우려와 기대 섞인 시선에서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을 연출 했던 제이크 슈라이어는 <썬더볼츠>라는 걸출한 결과물을 통해 현재 MCU의 첫 <엑스맨> 영화의 각본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맷 샤크먼 역시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판타스틱 4> 영화를 통해 <완다비전>이 단순한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둘이 앞으로의 MCU를 이끌기에 충분할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니엘 데스틴 크레턴이 등장합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미 화제 몰이를 한 이 인디 감독은 <샹 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통해 대형 블록버스터를 소화해낼 수 있음을 증명햤고, 이 덕에 한때는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의 감독 후보로 꼽히기도 했었죠. 그때 당시로썬 분명히 시기상조이긴 했으나 약간의 경험을 더한다면 충분히 MCU 제작진의 핵심 인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감독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원더맨>을 통해 그는 증명해낸듯 합니다. 크레턴은 MCU가 가장 필요로 하던 인간적인 스토리텔링을 하기에 그 누구보다 적합한 능력을 가진 감독입니다. 페이즈 7으로 넘어가기 전 마블 팬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뮤턴트'라는 존자를 각인시켜 보다 더 유기적이고 매끄러운 페이즈 전환에 기여할 인물이죠. 그리고 앞으로 슈라이어, 샤크먼과 함께 MCU의 중심축을 담당할 유능한 제작자로써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4. <원더맨>의 MCU 내에서의 위치와 역할
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원더맨>이 다음 MCU에서 중심 인물로 도약할만한 대서사시를 그린다거나 뭐 엄청난 떡밥을 뿌리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게 애초에 지향점도 어니었고, 이 스탠스가 앞으로 디즈니가 제작할 모든 드라마에서 유지될 것입니다.
원더맨이 앞으로 웨스트 코스트 어벤져스를 이끌던, 헐크와 싸우던 어떤 위치에 서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사이먼 윌러엄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고,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여러 뮤턴트들과 함께 아주 매력적인 서사를 더해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생기게 해주는 희망적인 결과물이 바로 이번 <원더맨>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로키>같은 규모와는 거리가 멀지만, 마블이 지금까지 해온 것들과 결이 다른 신선하고 컴팩트한 스토리를 원한다면 강력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마블 드라마가 아닌 그냥 웰메이드 버디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싶으신 분들께 오히려 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5. <원더맨>의 특장점은?
https://youtu.be/KtdAD2Sue3s?si=G97NDZCNgoT8v3Ur
가장 감탄했던 부분들은 바로 음악과 삽입곡의 활용입니다. 히어로의 탄생을 알리는 웅장한 테마곡 따위는 없고, 흑백 무성 영화를 연상케하는 묘한 선율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잡아줍니다. 이 작품이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지를 단번에 잘 보여주는 부분들이죠.
여기에 벤 킹슬리라는 영국 최고의 대배우를 드디어 제대로 써먹었다는 점에서도 너무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오스카 4회 노미네이트와 1회 수상에 빛나며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은 대배우를 그간 마블이 너무 푸대접했었죠. 이 드라마에서 그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시리즈 전체에 무게감과 디테일한 위트가 더해집니다. 그와 압둘 마틴 2세가 형성하는 브로맨스와 케미스트리가 실로 상당합니다.
결론적으로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마블 드라마중 가장 재밌는 작품은 아닐 지라도, 가장 만듦새가 뛰어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마블이 낸 작품 중에 가장 마블스럽지 않은 신선한 작품이며,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기 너무 좋습니다. 분명 마블이 현재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2026년 마블의 첫 번째 프로젝트 <원더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