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관객을 분노케 하는가
안녕하세요 곰 크루즈입니다.
요즘 아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이 하나 있죠. 바로 김병우 감독의 넷플릭스 대작 <대홍수>입니다.
공개 이후 이 영화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보면서 든 생각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주제 넘는 소리 몇 가지
'영화'라는 예술을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누군가의 최악의 영화가 어떤이의 인생영화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 내가 재미 없게 본 영화를 타인이 재밌게 봤다고 하면 축하는 못 해줄 망정, '영알못'으로 치부하면서 같잖은 급나누기를 한다거나 쓸데 없는 갈등을 조장하는것 만큼 저능한 행동이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2. 개연성에 너무 열을 올리고 날을 세운 나머지 영화가 가진 본질까지 부정하거나 폄하하지는 말자
- 개연성이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제작진의 의도에 조금 더 귀기울이면 훨씬 더 즐겁고 폭 넓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입니다. 유독 한국 관객들이 이 '개연성'에 대한 스탠다드가 높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3. 영화를 비난하고 싶으면 어느 부분에서 내가 몰입이 안됐는지, 어느 지점에서 영화가 실패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한 후에 의견을 피력할 것
- 비슷한 논리로 단순히 "영화가 말이 안돼서" 깐다는건 솔직히 말이 안됩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따지고 보면 '말이 되는 영화'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죠. 무작정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 보단 내가 어디에서 몰입이 깨졌고 어디서 내 공감을 잃었는지에 대해 진단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대한 저의 평가는요!
<대홍수>에 대한 개인적 평가
네, <대홍수>는 처참한 졸작입니다.
몇몇 분들이 한국형 SF '치고' 새로운 시도라는 이유로 필요 이상으로 올려 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론 단순히 시도가 새롭다고 해서 영화에게 '까임방지권'이 생기는건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은 새롭지도 않다는 점이 바로 이러한 평가들의 맹점입니다.
<대홍수>의 시놉시스는 그야말로 제작 초기에 트리트먼트 단계에서, 작품의 틀이나 아웃라인을 잡는 단계에서 '흥미롭게' 보일 수 있다 뿐 그 외의 모든 실질적인 실행 단계(execution)에서 총체적 난국입니다. 그나마 VFX 디자인을 제외하면 제대로 구현된게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는 나무위키에 있는 한 섹션인데, 이런 의문점들은 정말이지 아무 쓸모 없는 지적들입니다. SF 영화를 이런 식으로 본다면 그 어떤 영화도 말이 안되는 졸작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SF 영화든 허구성을 생각보다 많이 감안하고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설정에 대한 과학적 오류나 개연성이 아니라, 많은 대사량에 비해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는 불친절함과 설정에 대한 일관성 부족 등 많은 부분들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건 이겁니다. 이 영화의 핵심 시퀀스인 '실험체가 모성애라는 감정을 배우는 과정'이 전혀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이모션 엔진'이 다른 아이를 구하고, 출산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모성애를 충전하는 과정이라던지 엄마로써 희생을 하는 장면들 모두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습니다. AI의 딥 러닝 과정을 타임 루프 요소와 연결지었다 뿐 그 외에 어떤 당위성이나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 황당한 점은 바로 이 영화를 <해운대>를 연상케 하는 재난 영화처럼 관객을 '오도"(misleading)하는 프로모션 전략입니다. SF보다 재난 영화의 얼굴을 부각시켜 전통적으로 관객에게 외면 받아 왔던 흔한 한국형 SF가 아닌, 고예산 재난 영화로 최대한 많은 관객들을 낚아 시청자 수를 늘리기 위한 편법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케팅으로 미스리딩을 했다 한들 결과적으로 내용물 자체가 괜찮으면 이정도로 까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 영화가 정작 까여야할건 앞서 말한 설정 오류나 개연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잘못된 마케팅 전략도 아닙니다.
<대홍수>에게 진정으로 화가 나는 이유
<대홍수>가 이토록 극심한 반발을 사는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관객들이 이런 조악하고 빈약한 서사 사구조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 김병우 감독의 착각이 상당히 기만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형 SF라는 새로운 장르적 시도를 했다고 마냥 박수쳐주기 이전에, 이 감독이 얼마나 한국 관객들의 수준을 얕보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영화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감독의 자아가 너무 세서,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거나
2. 반대로 관객들로 하여금 너무 다양하고 모호한 해석을 유도해서 혼선을 준다거나
하지만 <대홍수>같은 경우엔 둘 다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충 흥미로운 설정만 갗다가 대충 타임루프 액션 넣고 재난영화 요소 집어넣고 모성애 강조하면 관객들이 알아서 따라 올거다라는 자만심과 자의식 과잉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아주 대단히 의미 있고 복잡한 스토리나 메세지를 담느라 대중성을 포기한 작가주의(Auteur) 영화로 치부하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영화들은 따로 있습니다. 정말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작품 세계를 녹여낸, 할리우드 공산품들과는 완벽히 대척점에 있는 감독의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련 영화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대홍수>는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흥행을 위한 얕은 술수들을 끼워 넣어어줍 잖게 <컨택트>와 <인터스텔라>같은 대작의 냄새를 풍길 수 있는, 그리고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런 작품들과 비견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착각을 유도하는 야비하고 같잖은 편법들이 난무하는 '괴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괴작도 분명히 '재밌게' 볼 수는 있습니다. 보다 울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감흥을 받았다면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깎아 내릴 이유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김병우 감독의 얕은 편법에는 최소한 속아 넘어가지 말자는 겁니다.
추가로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의견이 갈리는 현상이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누군가는 '양자 역학'을 운운하며 시대를 앞서간 천재적인 영화라 호평하고, 또 누군가는 킬링 타임 영화로써는 나쁘지 않았다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작품은 많이 봤어도, 호평을 하시는 분들 끼리도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의 간극이 이렇게나 크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또 알 수 있습니다.
나름의 근거
"너 뭐 돼?"라는 질문을 하실까 싶어서 대표적인 증거를 하나 가져와 봤습니다. 작품 제작 발표회때 김다미 배우가 한 인터뷰만 봐도 얼마나 작업 환경이 개판이었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대본이 수학 공식 같았다" = 그냥 말이 안돼서 이해가 안갔다
"매일 감독님과 1시간 정도 토론을 하고",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외우고 의미를 넣었어야"
= 대본 자체에 너무 허점이 많아서 현장에서 토론을 거친 후, 하나하나 내가 직접 외워서 의미부여를 했어야만 했다
"해수 선배님과 같이 가서 여쭤보면 그 자리에서 그날 대본을 바꾼 경우도 있었다"
"그럴수도 있겠네요" ????????????
배우들도 각본이 도통 이해가 안가니까 매번 가서 물어보고 따로 의미부여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또 의문이 생겨서 물어보면 감독은 '아 그럴수도 있겠네?' 하고 슥슥 대본 고치고...
캐릭터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어서 각본을 수정했다는게 아니라, 그냥 기본적인 설정이나 내용이 말이 안돼서 찍는 와중에도 쪽대본마냥 그때그때 고쳐썼다는 말로 들립니다. 이건 감독이 아니죠. 감독이라면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배우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 기사를 통해 김병우 감독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확신이 얼마나 없었는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1위 기록에 의미를 두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냥 말 그대로 클릭을 많이 했다 뿐 해외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처참합니다. 해외 역시 평단도, 일반 대중도 전부 등을 돌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솔직히 김다미 배우의 '수학공식' 발언 때문에 큰 맘 먹고 영화를 본 것도 있습니다. 본 사람들 사이에선 <인터스텔라> <컨택트>가 언급되고 배우는 각본이 너무 어려웠다고 하니 혹시 너무 시대를 앞서간 작품인가 싶어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고, 태어나서 본 영화중에 가장 안일하고 무지하고 영혼없고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영화만 못 만들었으면 그려려니 하는데, 홍보 전략이나 연출 방식 등 곳곳에서 보이는 기만적인 태도가 저를 분노케 했습니다.
차라리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뇌 빼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려려니 해도, 나는 그런 작품들과 다르다는 듯 온갗 "척" 들로 교묘하게 관객을 현혹시키는 행태에 더 기가 찼습니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혹할만한 요소들은 꾸역꾸역 넣어 가면서 자기가 자기 꾀에 넘어간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이 영화가 단순히 만듦새가 떨어져서 욕을 먹는 것 만은 아닌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소 강한 워딩에 미리 사과드리며, 이만 리뷰 마칩니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공식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