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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Nov 17. 2022

나의 오랜 친구 월경

 얼마 전 지인의 근황을 신문에서 읽었다. 퇴직하고 어느 단체의 대표가 되어있었다. 짧은 반백의 머리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를 연상시켰다.


 이혼을 축하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지인은 자신의 이혼을 축하해달라며 후배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고 한다. 이혼이 모두에게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축하받고자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 처음을 열어준 게 반가워서 나도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월경이 끊긴 것을 축하하며 완경 파티를 하기도 했다. 사춘기 여자아이들이 초경파티를 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완경 파티를 한다는 건 조금 유별스러워 보였다. 완경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을 때였다.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갱년기 경험도 듣고 싶었다. 근래에 나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소화가 어려워 식사량을 줄였는대도 체중이 늘고 있다. 시력도 집중력도 순발력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를 말하자 친구들은 생리가 끊겼는지, 병원에 가봤는지를 제일 먼저 물었다. 호르몬 치료는 갱년기 초기에 받아야 한다고 했다. 월경이 끝났는데 뭐하러 호르몬 치료까지 받냐고 되묻자 폐경이 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나를 몰아붙였다.


 폐경이라는 말 말고 월경의 완성,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된다는 뜻으로 완경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지만 나의 친구들은 계속 폐경, 폐경했다. 완경이라는 말을 쓰고,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와이어와 캡이 달린 브래지어를 벗어버린 나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아직까지 그 답답한 브래지어를 입고 있는 친구들이 답답했다.


 수도 하나를 같이 쓰면서 숟가락 들고 네 집 내 집을 오가던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 것이다. “너랑 안 놀아!” 하며 휙 돌아서던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소통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었던 모양이다.  

 소통! 소통이 안 되는 건 친구뿐만 아니라 내 몸과도 그렇다. 요즘 들어 몸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몸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나의 친구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몸을 인식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열세 살에 만난 초경, 이십 대 때 연애와 임신, 출산, 피임시술, 완경 한 지금 몸까지. 그러자 소녀에서 오십 플러스라고 말하는 지금까지의 삶이 내 월경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경은 내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밀한 비밀까지 다 알고 있는 친구였다. 그런 월경을 아무렇지 않게 떠나보내는 게 어쩐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월경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르기로 했다. 연민과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었다. 먼저 나의 월경에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친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오랜 친구! 나를 잘 아는 소울메이트!  딸에게 말했다.


 “엄마, 월경에 이름 붙였어. ‘오랜 친구’야. 어때?”

 “그래? 그 친구랑 곧 헤어지겠네.”


 건조한 반응이었지만 성찰을 갖게 하는 대답이었다.  더 늦기 전에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해방감도 아니고 상실감도 아닌 이 작별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편지를 써야겠다. 잘 가! 정말 고마웠어!라는 인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글은 어렵지 않게 쓰는데 나의 오랜 친구 월경에게 편지 쓰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내 인생에서 가장 쓰기 힘든 편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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