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멘티, 세상에서 가장 멋진 S
가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같다며 나를 자신의 멘토로 삼는다는 분을 만난다. 많이 부족한 사람인지라 부끄럽지만, 그분들이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그분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주는 정도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올 초 나에게 중학생 멘티가 생겼다. 나의 가장 어린 멘티다. 법무부 기관에서 멘토 활동에 관해 얘기했고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멘토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 후 나의 멘티가 된 S, 부모가 어딘가에 있으나 부모의 역할을 하지 않고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팔순이 되어가는 할아버지는 졸지에 어린 두 아이의 양육자가 되었다. 자신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체 엄격한 할아버지 옆에서 숨이 막힐 지경인 듯했다. 편히 쉬실 나이에 어린 손주 2명을 양육해야 하는 할아버지도 아이들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S는 제법 크고 비싼 물건을 훔쳤고 반복된 행동으로 이곳까지 왔다. 담당관이 볼 때 안쓰러웠고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의 멘티가 되었다. 첫 만남은 법무부 기관에서 담당관과 나, 보호자인 할아버지 그리고 S가 만났다. 선하게만 보이는 아이는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담당관이 멘토인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껏 자랑한 상태라 할아버지는 나에 대한 기대가 컸고 내가 멘토라 무척 좋다고 말씀하셨다. 마치 내가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사람처럼 보시는 듯했다.
S와의 첫 멘토링은 OT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앞으로 어떻게 면담할 것이며 할아버지와 S, 동생과의 상호 관계에서 대화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서로 존중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의 만남과 매주 통화를 하며 S의 학습과 생활방식, 마음 상태를 체크하기로 했다.
S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했더니 한 번도 전화 온 적 없다. 힘든 일도 없고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전화할 때마다 밝은 목소리로 소통했고 예전보다 가족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했다. 사소한 다툼은 있으나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라는 아이 말에 나는 안심했다.
2014년도에 ‘위기가정 바로 세우기’에 참여한 적 있다. 자살 시도 3번 한 6학년 여학생과 중학생 오빠를 8개월 동안 상담했다. 중간중간 양육자인 할머니와도 상담을 진행했다. 어린 핏덩이를 두고 도망간 엄마를 대신해 친할머니가 아이들을 키운 조손가정이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도망간 며느리를 떠올렸고 아이들을 학대했다. 아이의 팔뚝에는 몇 번의 칼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여학생은 첫 만남에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만남을 거부했고 상담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러 번 이런 과정을 겪었던 터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하면 만날 거야?”
“카페에 가서 음료수도 마시고 맛난 것도 먹으면서 얘기하면 할게요?”
근처에 있던 카페로 남매를 데리고 가서 먹고 싶은 걸 주문하라고 했다. 음료와 빵을 주문했고 카페에서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날 시간 약속 잘 지키면 만날 때마다 맛난 걸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냉면도 먹고 고기도 먹고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것은 아낌없이 사줬다. 4번째 만남이 있기 전 아이들이 먼저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언제 만나요? 빨리 만나고 싶어요.”
휴대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아이의 말에 만나는 날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만났고 고깃집으로 갔다. 남매는 먹는 것에 집착을 보였다. 성장기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고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침은 걸렀고 점심은 학교급식 저녁은 지역아동센터에서 해결했던 아이들이라 먹을 것에 집착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나와 아이들은 신뢰가 형성되었고 8개월간 함께 했다. 그동안 큰아이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급히 해결한 일 외는 자살소동이나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해 12월 상담은 종료되었다.
나는 바빴고 그 후 아이들과 통화한 적 없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하지 못함이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으로 남아있고 가끔 그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함부로 맡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법무부 팀장님께서 멘토에 관해 말했을 때 망설인 이유도 이 아이들 때문이었는데 상담이 아니라 멘토라는 이름으로 S와 인연을 맺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S에게서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오늘 통화를 하다가 잘하는 게 무엇이냐고 했더니 그림을 잘 그린다며
“선생님, 꽃 좋아하세요? 무슨 꽃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장미꽃도 좋아하고 들국화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S는 장미꽃 한 송이를 그려서 바로 보내줬다. 난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다음에 만날 때는 그림 그리는 것을 가르쳐달라고 말했더니 신나서 그러겠다고 했다.
내 폰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S’라고 저장되어 있다. 첫 만남에서 폰을 아이에게 건네주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S”
라고 불러주며 직접 저장하라고 했다. 아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함과 수줍은 표정 속에 환한 웃음을 보였다.
올해 나는 멘티 S와 긴 여정을 함께 할 예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나의 S에게 작가님들의 관심과 사랑과 기도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