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by 전소현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른 채 살아간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하루가 어떻게 펼쳐질지, 이 선택이 어디로 이어질지, 지금 이 관계가 내일도 같은 자리에 있을지—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어난다. 밥을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또 하루를 살아낸다. 그 용기가 어디서 오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어쩌면 그것이 삶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누가 끝까지 읽겠는가.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은, 오늘이 어떤 하루일지 아직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확실함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우리는 비슷한 존재들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도시의 골목을 걷고, 비슷한 걱정과 비슷한 욕망을 품고 산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무게가 있고, 저마다의 방향이 있고,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우리는 서로 부대끼면서도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는 있어도, 대신 짊어질 수는 없다. 그 고독함이 때로 우리를 가장 깊은 곳에서 흔든다.



불안은 언제나 모퉁이에 있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지금 이 발걸음이 어디로 닿을지 모른다는 것, 열심히 달려왔는데 방향이 맞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것. 그 막막함이 한밤중에 문득 찾아올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서게 된다. 잘 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 질문들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영영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무감각해진 사람은 묻지 않는다. 이미 포기한 사람은 방향을 걱정하지 않는다. 공허하다는 것은, 아직 어딘가에 닿고 싶다는 뜻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공허함이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에 우리는 공허함을 느끼지 않는다. 떨린다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신호다. 그러니 공허함은 삶의 적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무너지는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지쳐있는 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 분명히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 한없이 혼자인 것 같은 날. 그런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항상 웃는 사람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숨이 트인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것. 저 분홍빛 무리 중에 완벽하게 균형 잡힌 채로 달리는 존재는 없다는 것.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 흔들린다는 것은 멈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무너진 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그냥 그날을 끝내는 것. 거창한 결심이나 다짐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오늘 하루가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괜찮을 수 있다. 그 가능성 하나만 붙들어도 충분하다.


그래도 빛은 비추어지고 있다.

이것이 이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방향을 잃은 것 같아도, 검은 배경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찾아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기 있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는 햇살처럼, 어두운 배경 위에서도 분홍빛이 사라지지 않듯이.

그 빛이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는 없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일 수도 있고, 별 것 아닌 말 한마디에 괜히 웃음이 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오래된 노래가 불현듯 흘러나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일 수도 있고,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쳐 서로 잠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일 수도 있다. 삶은 그런 작은 빛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자주 잊는다. 더 크고 확실한 무언가를 찾느라, 이미 손안에 있는 빛을 흘려보내면서.

빛을 찾는 것은 어쩌면 기술이 아니라 습관이다. 오늘 하루 안에서 단 한 가지, 작고 따뜻한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쌓이면 어느 순간 어둠보다 빛이 더 많은 삶이 되어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른 채 달린다. 서로 부대끼고, 때로 방향을 잃고, 가끔은 중심을 잃고 굴러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리 안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같은 어둠 속에서 같은 빛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함께인 것이다.

모르면 어떤가. 흔들리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서고, 방향을 잃었다가도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는 방식이고,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위로다.

그러니 오늘도, 달리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빠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빛은 언제나, 이미 비추어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