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음을 알기 위해선 낮음을 알아야함을
결국 우리는 하나니까
이 그림을 그리면서 계속 이 생각을 했다.
분홍빛 세상 한가운데, 두 존재가 서로를 끌어앉고 있다. 주변에선 정체 모를 다리들이 사방에서 뻗어 들어온다. 할퀴려는 것처럼, 끌어내리려는 것처럼. 세상의 온갖 부정성, 끊임없이 쏟아지는 나쁜 뉴스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들. 그것들을 그 다리들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두 존재는 그 한가운데에서 서로만 바라보며 손을 놓지 않는다.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 세상은 분리처럼 보인다.
각자의 피부 안에 갇힌 몸, 각자의 언어로 구성된 생각, 각자의 상처로 쌓아올린 벽.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별적인 존재로 호명된다. 이름이 생기고, 경계가 생기고, 나와 너를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과연 그 경계가 진짜일까.
동양철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만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왔다고. 불교는 연기(緣起)라는 말로 설명했다. 모든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분리된 채로 태어나는 걸까.
높은 것을 알려면 낮은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연결을 느끼려면 단절을 먼저 경험해야 한다. 사방에서 뻗어드는 텅빈 인형의 다리들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끌어내리려 한다. 그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붙잡는 행위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우리가 본래 하나였다는 걸 몸으로 기억하는 방식이다.
온갖 부정성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도, 나는 이 하나의 사실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결국 서로를 보듬는다는 것.
재난 앞에서 모르는 사람의 손을 잡고, 무너진 사람 곁에 이유 없이 머물고, 말 한마디로 낯선 이의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 이것은 학습된 행동이 아니다. 훨씬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림 주변을 가득 채운 하트들처럼, 세상의 온갖 손길이 파고드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사랑은 이미 흘러넘치고 있다.
사방에서 인형다리가 뻗어 들어와도, 두 존재는 서로를 놓지 않는다.
그 장면을 그리면서 나도 조금 위로가 됐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흔들어도, 서로를 향하는 이 마음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걸.
우리는 큰 사랑을 알기 위해 작은 몸으로 태어났다. 분리를 경험하며 연결을 갈망하고, 상처를 받으며 온기를 배우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결국 우리는 하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