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많은 이유

그래도 봄은 봄이다.

by 한량을 꿈꾸며

봄이 왔다. 아니, 이제는 여름인가?

봄이라 생각했는데 눈이 내리고, 여름이라 여겼는데도 추위에 떨어야 하는 이상한 날씨가 매년 반복된다.

우리나라 기후가 점점 아열대성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갑자기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치는 스콜성 소나기가 동남아에서처럼 잦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봄이다.


새싹은 돋아나고, 논과 밭에는 모내기와 파종이 시작된다. 과실수는 달콤한 열매를 맺기 전에 먼저 예쁜 꽃을 피워낸다.


아이들의 독립을 꿈꾸는 나이에 밭에서 모종을 심는 모습을 보니, 문득 아이들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단체생활에 적응하던 중 수두에 걸려 돌아온 일이 있었다.

예방접종을 했음에도 전염성이 강해 친정엄마의 시골로 잠시 맡겨야 했다.


그때 봄이라 엄마는 밭을 정리하고 여름 내내 먹을 고추를 심고 가을걷이까지 준비하고 계셨다.

많은 수확을 위해 200개가 넘는 구멍을 뚫고 모종을 심을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도시에서만 자라 밭일을 처음 본 여섯 살 아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응, 고추 심으려고 구멍을 파고 있단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엄마는 손자의 울먹이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때의 해프닝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울먹이며 아이가 한 말은 이랬다.

“할머니… 나는 한 개밖에 없는데, 구멍을 저렇게 많이 뚫으면 어떡해요…”

순수한 오해가 만들어낸 그 순간은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지금도 떠올리면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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