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야 Aug 22. 2022

빨리빨리 vs 천천히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세신사 이모님께 물었다.

"이모님, 앞에 몇 명 있어요?"

"둘 있는데 상황 봐서 좀 먼저 밀어줄 수 있으면 번호 불러 줄게요. 할머니 한 분이 전에 돈 먼저 내고 그냥 가셨는데 오늘 미실지 안 미실지 모르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두 명이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락커 키를 맡겨두고 쑥탕과 녹차탕을 오가며 때를 불렸다.


탕에 들어가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 조로록 맺힌 물방울들.

큰 물방울, 작은 물방울을 하나씩 세어보며 나름의 규칙을 찾아보기도 하고, 토끼 모양, 하트 모양으로 모여 있는 물방울들을 보며 혼자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흐른다.


아주머니 한 분이 여러 번 세신사 이모님께 찾아가 뭔가 얘기하고 가시는데 떨어져 있어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쑥탕 벽에 붙여둔 쑥탕의 효능을 읽어 본다.

빈혈. 신경통. 냉증. 류머티즘. 노이로제. 심장병에 효과가 있단다. 거의 만병통치 수준이구나.

"12번 언니, 와요."

생각보다 시간이 금세 지났다.

 세신사 이모님 드릴 음료수 한 병을 챙겨 세신실로 들어갔다.

"이모님, 당 충전 좀 하세요."

"아이고, 고마워요. 앞에 여럿 미느라 달달한 게 당겼는데."

음료수를 쭉 들이키시더니

"사람이 참 말을 해도 듣기 좋은 사람이 있고, 얄미운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잖아요."

"언니 앞에 밀고 간 사람이 세 번이나 앞사람 밀고 있는데 찾아와서 자기가 바쁘니까 빨리 좀 해달라고 계속 재촉했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 미는 시간이 대강 정해져 있는데, 밀고 있는 사람을 대충 밀고 그 사람을 밀어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얼마나 급하면 저렇게 계속 찾아와서 얘기하나 싶어 이따 좀 빨리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자기 차례가 돼서 딱 눕자마자 빨리 밀지 말고 천천히 밀어달라고 하는데 너무 얄밉더라고요."

"좀 그렇네요."

"남은 대충 빨리 밀고, 자기는 천천히 오래 밀어 달라는 게 괜히 얄미워서 빨리 밀고 보냈어요."

"아이고, 덕분에 어부지리로 제가 빨리 밀게 되었네요. 혼자 일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예전엔 두 분이 같이 하셨던 것 같은데."

"코로나로 사람이 줄어드니까 때 밀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일하던 사람들도 다들 그만두고 나갔어요."


툭툭.

이야기 중에 이모님이 다리를 두 번 두드린다.

자세를 바꾸라는 싸인이다.

앞, 옆, 뒤, 옆, 다시 앞.

골고루 밀고 나면 바디클렌저 거품을 몸에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신다.

뜨거운 수건 두 장을 등에 얹고 어깨와 팔을 두드려 주시는데 팡팡팡 그 소리가 참 경쾌하다.


개운하게 세신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린 것 같았다.


빨리빨리를 외치던 아주머니가 천천히를 요구했으나 오히려 더 빨리 끝나버린 세신 시간이 내 차례에 더해진 느낌이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잠 12:18)


뜬금없이 잠언 말씀이 떠오른다.

함부로 말하는 자는 칼로 찌르듯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하게 한다.

하지만 양약과 같은 말을 하는 지혜로운 자는 그 상한 마음을 치료하고 살린다.


나의 말 습관은 어떤가?


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말들을

때밀이 수건으로 싸악~ 밀어버리고

지혜로운 혀로 사람을 세우고, 치료하며 살리는 양약과 같은 말을 흘려보내는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휘어진 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