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씻고 있는 중이었어요. 물을 틀어놓고 물이 내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물은 자신의 소리를 가지고 나를 하나하나 지나갔습니다. 물이 지나갈 때 그 소리 사이에서 톡 떨어지는 생각 하나를 주워듭니다.
본래부터 나는 외로운 영혼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지금의 외로움이 새로운 것이 아님을 눈치챕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숙명과도 같은 그것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아채 버리다니요. 그건 갑작스럽긴 하지만 제 피부 속에 숨은 핏줄 같은 것이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닙니다. 이젠 그걸 인식하는 저를 깨닫고 절박함에 가슴이 조금씩 더 뜨거워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린이였던 저를 바라봅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고 그닥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치고 갑니다.
국민학교 시절 6년 간 여섯 번의 이사와 전학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으니까요. 누구도 내게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외로움이 옵션으로 붙어 다니게 된 계기랄까요?
오래도록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없었고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함께 놀아본 적도 없습니다. 지금 아련하게 떠오르는 친구는 중학교 시절 친구 경아와 고등학교 친구 혜인이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경아는 제 결혼식 드레스를 만들어준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마침 제가 결혼할 즈음 경아는 명동에서 웨딩드레스샾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드레스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경아를 찾아갔습니다. 경아의 서늘하고 큰 눈이 반짝 반가움을 드러냅니다. 경아가 드레스를 아주 정성껏 만들어 주었지요.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경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면 경아는 쓸쓸하도록 숱이 적은 머리칼을 쓱 넘길 거랍니다. 전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군요.
혜인이는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저와 베프였답니다. 지금까지 그걸 유지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운 점이지만 연락은 가끔 합니다. 경아도 혜인이도 다 그립지만 아빠와 엄마도 아프게 그립습니다. 전 아직 많이 늙지는 않았는데 부모님은 중년인 저를 두고 가버리셨거든요. 제가 늙어가는 걸 살짝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아, 우리 딸에게도 내 것 같은 흰머리가 찾아오는구나 하시며 흐흐 웃으셨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외로움이 더 짙어져만 갑니다. 늙어가는 걸 보아줄 아빠도 엄마도 안 계시고 함께 늙어갈 친구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제 자신을 물에게만 맡길 뿐인 오늘의 제 모습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