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아트홀에서 매년 크리에이티브 토크 프로그램이 개최된다. 이슈가 있는 사람들이나 유명인들 가운데 4명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에는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올해 내가 티켓팅 한 작가는 김영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서가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유명한 작가다. 그의 최근의 소설은 읽지 않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여행의 이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은 예전에 읽었다. 그냥 요즘 그는 어떤 책을 쓰고 있는지 그의 근황이 궁금해서 강연장을 찾았다.
이번 강연의 제목은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쓸모 있는 이야기]이다. 과연 이 제목에 걸맞은 강연을 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사회자가 중간중간 관객의 질문을 엮어가며 이루어진 강연이라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는 늘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지금도 책상 위에 여러 가지 일거리들을 늘어놓고 진행하며 이 일도 했다가 저 일도 하는 부산스러운 사람이라고. (나랑 비슷~^^;) 어릴 때부터 한 가지 일에 집중하거나 무언가에 몰입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자신이 ADHD 성향이 확실하다고 고백한다. 복잡하고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그는 2020년도에 인스타를 통해 '김영하 북클럽'을 시작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해 궁금해하는지 몰랐다며 나름 재미있었다고 한다. 또 '영하의 날씨'라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했다고. 그러면서 구독자들에게 세 명의 지인을 정해 자신의 뉴스레터를 소개하게 만드는 다단계 방식을 도입한 경험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도모하면서 본인이 혼자인 걸 즐기는 사람이면서도 함께 하는 즐거움과 재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역시 달변가다. 어떤 질문에든 물 흐르듯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질문자에게 맞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순전히 아버지의 강요로 문학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대학 생활이 그리 즐겁지 않았단다. 그래서 3학년 이후로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부모님이 생각지도 못한 소설가의 삶을 살고 있다. 역시 부모의 생각으로 자녀들을 푸시하는 일은 역효과를 일으키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자신에겐 부모도 말릴 수 없는 소설가의 타고난 품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지어 팔기까지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아이들을 이것저것 많은 경험에 노출시키라고.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아이들이 무엇에 꽂힐지 알 수 없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문학적인 글은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이 들어온다. 그는 '글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작가라며 글쓰기는 타인의 주의를 끄는 재능이라고 말한다. '부모는 과거를 보며 운전하는 사람들'이므로 부모의 의견보다는 자신이 행복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방법이다. 본인은 날씨가 좋고 행복한 생각이 들 때보다는 울적하고 기분이 다운되어야 글이 잘 써진다고 한다. 역시 두루두루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는 글이 나오지 않는구나. 자기의 글쓰기 재능을 친구들이 알아본 것처럼 진짜 재능은 가까운 주변에서 알아본다. 그러니까 주변의 지인들이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또 문학적인 글은 자기 안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하고 솔직하게 어두운 마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며 뻔하지 않아야 한다.
* 책 읽는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서는 책은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독서광들은 책을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빠르다. 그래서 바로 읽지 않을 책이라도 책은 꽂혀 있는 것만큼 효용이 있는 것이다. 서고에 꽂아둔 책들의 시선을 느끼며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직 읽히지 않은 책들은 내게 말을 건다. 그래서 도서관에 갔을 때 수많은 책들 중 읽지 못한 책을 바라보며 지적인 무지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책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책이 필요하다. 봄에 시골의 촌로들이나 중년 여성들이 고사리를 따러 다니면서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홀려 산을 헤집듯이 책을 모을 때 채집 황홀을 느끼는가? 독서광들은 그때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는 것을 느낀다. 수많은 책을 읽고 고르고 그 안에서 내게 맞는 것을 발견하는 희열은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추천이나 부모의 권유가 아니라 직접 자신이 찾아 나서야 한다. 책을 찾아 읽으면서 실패하는 경험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이다.
*미래의 풍경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의 아버지도 어릴 때 자신에게 '우물 정' 자를 수백 번 연습시키는 우를 범하셨단다. 그 시대는 글씨를 잘 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지금 글씨의 효용은 많이 희석되었다. 2023년 chat G.P.T의 출현으로 직업의 판도도 바뀌지 않았는가. 법관이나 변호사 같은 법적 필요의 직업이 겨우 유지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인간에게만 남겨진 것들이 중요해지고 있다. 정치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것, 협상을 유도하고 진행하는 것, 심리학과 같은 인문학적 부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 필요해진다. 타인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힘 말이다. 문학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내면의 어려움, 사람의 표정과 내면의 걱정을 문학을 통해 배우게 된다. 그건 또 다른 심리적 훈련이 되기도 한다. 사회자가 요즘 근황에 대해 묻는다. 최근에 그는 '김영하의 세계문학 원정대'라는 문학 만화를 집필했다. 그러나 인기는 별로 없단다.
*한 관객이 김영하의 책에서는 다른 책에 대해서 나오는 내용이 많다며 그래서 책이 책을 연결하는 독서가 된다고 한다. 관객에게 대답을 들려주며 자신은 한 책에 집중하기보다 주로 병렬 독서를 하고 있단다. 읽다 보면 책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독서가로 성장하는 과정은 곧 읽어야 할 책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읽는 일이 진화해 가면서 더 나아가 삶의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문학은 곧 -인생을 더블링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이야기의 세계 속에 있다가 돌아오면 그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건 김겨울 강연에서 들었던 내용과 같았다) - 다른 삶을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 독서가는 정신적인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 책은 사람을 바꾼다. 겉으로는 조용히 책에 빠져 있는 듯 보이지만 내면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 소설은 하나의 테마파크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영화로 할 때 원작자가 얼마나 관여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영화화의 과정에서 원작자가 참여하는 것을 관계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은 영화판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았단다. *관객의 질문이 이어졌다. 작가가 딱 하나의 책을 추천한다면 무엇인가. - 작가는 '검은 꽃'을 추천했다. 왜인지는 잊어버렸다.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읽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러 가지를 두루 경험해 보는 것을 청소년에게 추천하며 강연을 마쳤다.
이 강연은 물 흐르듯이 대담하듯이 인터뷰하듯이 이루어졌다. 수많은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변하는 것은 세계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문학과 소설과 독서의 효용`이 아닐까 싶다. 김영하는 달변가다. 한 시간 반 동안 그의 달변의 흐름 위에 앉아서 구름에 달을 보며 미끄러지듯 젖어들었다. 정말 진심 어린 독서가가 되어 문장의 테마파크를 여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