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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Sep 19. 2024

향기로운 작품 한 잔

함께 드실래요?


조촐하게 교회 식구들을 만나는 주일입니다. 평소에 커피를 즐기는 목사님께서 교인 가정에 특별한 커피콩 한 봉지씩을 선물하셨어요. 추석선물이랍니다. 팬들을 위해 역조공을 하는 연예인처럼 종종 저희 목사님도 교인들에게 선물을 하곤 하신답니다. 전국 로스팅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원두라고 합니다.


예배 시작 전에 교인들 맛보라고 커피를 갈아 내리고 계셨네요.

음~

코가 먼저 반응합니다. 저렴하고 소박한 입맛을 갖고 있는 저는 원두보다는 믹스커피를 더 좋아하는데 이날은 매혹적인 커피 향에 사로잡혀서 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커피잔에 반 정도 커피를 따랐습니다. 먼저 그의 빛깔을 확인합니다. 진한 와인에 투명한 갈색이 섞인 듯한 커피의 얼굴에 한번 매료되고 그가 이끄는 강한 향에 홀린 듯이 저절로 을 가져가게 다.


입술에 닿는 첫 느낌, 실크같이 감싸고 보드라운 양털처럼 간질입니다. 이미 혀끝에는 수많은 돌기들이 쫑긋거리며 이 따뜻한 향의 정체를 탐방합니다. 맑은 투명함 속에서 수백 가지 표정을 만난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네요. 돌기를 따라 퍼지는 고소한 향이 마카다미아인 것 같기 고 여러 개의 견과류 향이 섞인 체리의 맛이 혀를 깊이 감싸기도 하네요. 사랑스럽게 시고 귀엽게 고소한 맛. 아주 적절한 산미로 입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이럴 땐 한 잔의 커피는 매혹의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잔 더 잔에 따릅니다. 그를 따라가며 달라지는 온도에 제 맘도 조바심을 냅니다. 내용물이 사라지는 게 아쉽거든요.

식어도 처음의 매력을 잃지 않은 원두는 오랜만이었어요. 보통은 따뜻함을 빼앗긴 커피는 쓴 맛을 던지며 자신의 얼굴을 바꾸거든요.


이런 훌륭한 커피를 마시다보면 흡사 신화 속의 신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나누는 신비로운 대화 속에 저도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어우러지는 맛의 축제가 입속에서 열리는 것이지요.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월한 로스팅 기술이 한몫한다고 합니다. 원산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콩의 품질도 아주 중요하다고 해요. 

목사님의 지인 한 분인 커피박사님의 설명대로라면 장장 1억 5천짜리 로스팅기계에 들어간 커피콩을 볶기 시작하면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고 합니다. 볶는 중에도 수시로 냄새를 확인하고 불을 조절해 가며 습도와 온도를 체크해야만 이런 깊고 웅장하며 다채로운 맛의 커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토록 민감한 커피콩을 다루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인 것 같죠.  



우리는 단순한 커피콩 속에 로스팅하는 사람의 영혼과 시간과 노고가 녹아들어 간 커피 한 잔을 그것과 딱 맞는 돈을 지불하고 마시는 셈이에. 커피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죠.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맛을 만나기 위해서 엄청난 내공을 갈고닦아  잔의 커피가 발휘됩니다.

이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이제 저는 한 잔의 커피를 들고 전문가가 만들어낸 그의 작품 하나를 오래오래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입술로 혀로 눈으로 코로 말이죠.


이상, 커피 문외한인 어떤 사람의 입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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