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하게 교회 식구들을 만나는 주일입니다. 평소에 커피를 즐기는 목사님께서 교인 가정에 특별한 커피콩 한 봉지씩을 선물하셨어요. 추석선물이랍니다. 팬들을 위해 역조공을 하는연예인처럼 종종 저희 목사님도 교인들에게 선물을 하곤 하신답니다. 전국 로스팅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원두라고 합니다.
예배 시작 전에 교인들 맛보라고 커피를 갈아 내리고 계셨네요.
음~
코가 먼저 반응합니다. 저렴하고 소박한 입맛을 갖고 있는 저는 원두보다는 믹스커피를 더 좋아하는데 이날은 매혹적인 커피 향에 사로잡혀서 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흰 커피잔에 반 정도 커피를 따랐습니다. 먼저 그의 빛깔을 확인합니다. 진한 와인에 투명한 갈색이 섞인 듯한 커피의 얼굴에 한번 매료되고 그가 이끄는 강한 향에 홀린 듯이 저절로 입을 가져가게 됩니다.
입술에 닿는 첫 느낌, 실크같이 감싸고 보드라운 양털처럼 간질입니다. 이미 혀끝에는 수많은 돌기들이 쫑긋거리며 이 따뜻한 향의 정체를 탐방합니다. 맑은 투명함 속에서 수백 가지 표정을 만난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네요. 돌기를 따라 퍼지는 고소한 향이 마카다미아인 것 같기도하고 여러 개의 견과류 향이 섞인 체리의 맛이 혀를 깊이 감싸기도 하네요. 사랑스럽게 시고 귀엽게 고소한 맛. 아주 적절한 산미로 입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이럴 땐 한 잔의 커피는 매혹의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한 잔 더 잔에 따릅니다. 그를 따라가며 달라지는 온도에 제 맘도 조바심을 냅니다. 내용물이 사라지는 게 아쉽거든요.
식어도 처음의 매력을 잃지 않은 원두는 오랜만이었어요. 보통은 따뜻함을 빼앗긴 커피는 쓴 맛을 던지며 자신의 얼굴을 바꾸거든요.
이런 훌륭한 커피를 마시다보면 흡사 신화 속의 신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나누는 신비로운 대화 속에 저도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어우러지는 맛의 축제가 입속에서 열리는 것이지요.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월한 로스팅 기술이 한몫한다고 합니다. 원산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콩의 품질도 아주 중요하다고해요.
목사님의 지인중 한 분인 커피박사님의 설명대로라면 장장 1억 5천짜리 로스팅기계에 들어간 커피콩을 볶기시작하면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고 합니다. 볶는 중에도 수시로 냄새를 확인하고 불을 조절해 가며 습도와 온도를 체크해야만 이런 깊고 웅장하며 다채로운 맛의 커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토록 민감한 커피콩을 다루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인 것 같죠.
우리는 단순한 커피콩 속에 로스팅하는 사람의 영혼과 시간과 노고가 녹아들어 간 커피 한 잔을 그것과 딱 맞는 돈을 지불하고 마시는 셈이에요. 커피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죠.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맛을 만나기 위해서 엄청난 내공을갈고닦아한 잔의 커피가 발휘됩니다.
이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이제 저는 한 잔의 커피를 들고 전문가가 만들어낸 그의 작품 하나를 오래오래 감상하게 되었습니다.입술로 혀로 눈으로 코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