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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Sep 05. 2024

영롱한 사람들이 내는 빛

청소노동자의 속울음




온몸이 노골노골해져서 돌아왔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를 타고 걸어서 마트로 들어가 식료품을 사고 값을 치렀고요.

그러면서도 물  사람마냥 내 울음소 들리지 않고 귀가 멍하네요.

조금 과로했는지도 몰라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몽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현실감이 없었다면 말 다했죠.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하던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 아랫배 밑바닥부터 흑흑 흐느끼는 속울음이 길어 올려졌어요. 

가 왜 이럴까요? 



청소 일은 잠깐의 숨쉬기 같은 것이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이 버거워질 무렵이었거든요.

어느 모로 보나 이 일을 하는 걸 가족들이 알게 된다면 반대할 게 뻔해서 그냥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듯이 가볍게 나갔다 왔지요. 가족들 모르게 잠시 다녀오는 마실처럼 짜릿했다면 제가 변태일까요?

그래서 은근한 마음의 여유까지 다면요.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제가 청소를 좀 좋아하거든요. 스트레스를 받을라치면 강박 비슷하게 쓸고 닦고 치우는 일을 하고 나면 무거웠던 회색 마음에 하얀 구름 한 장이 걸린 것처럼 화창해지기도 했어요. 청소를 할 때면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손과 팔꿈치가 하는 말을 듣게 더라고요. 떤 무아지경을 경험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 날 제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던 거는요, 사실 청소 때문이 아니었어요. 청소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 어쩌다 한번, 소를 주문한 사람들의 내리깐 시선이 도 하고 배려 없는 지시가 등을 떠밀 때도 어요.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난 내 일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이 날주어진 시간 안에 꼼꼼하게 청소를 수행했음에도 계속적인 요구가 뒤따랐어요. 여기도 부탁해요, 저기도 좀 해주세요. 사실 약속한 청소 구역을 다 하고도 시간이 아주 조금 남았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했지요. 

으로는 그래, 해주마. 신의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하면서 묵묵히 해냈지요.

젊은 여자의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한마디 할 때까지는 괜찮았거든요. 자기 그는 것저것 내게 청소를 지시하는 기 아내에게 그만해! 하고 버럭 하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전 좀 놀랐어요. 그리고 내게 말했어요.

"이젠 가셔도 돼요." 

휴.


그녀의 남편이 보기에도 무리한 요구가 선을 넘었나 봐요. 아니면 한마디 거절도 못하고 다 들어주는 중년 아줌마가 그의 생각에도 썩 바보 같았을 수도 있고요.

그 집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내 깊은 곳에서 밧줄이 끊어지듯 투둑 내리꽂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마치 검고 굵은 못이 땅을 밟는 제  발자국 하나하나에 박히는 것처럼 쓰리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청소는 눈에 보이는 예쁜 결과물을 줘요. 먼지떨이개와 청소기 하나, 걸레 몇 개가 춤추고 지나가면 허리는 뻐근하지만 마음 밑바닥엔 햇살이 어요. 화장실과 거실과 안방과 드레스룸 그리고 세컨드룸을 휘젓다 보면 실크로드가 환하게 열리듯이 공간의 맨얼굴이 드러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게.

화장실 청소도 그래요. 더럽기가 더럽기가 한 일 년 청소 구경못한 것처럼 어이없는 몰골을 하고 있다가도 물과 세제와 솔과 수세미의 마법이 펼쳐지시원한 파도가 지나가듯 투명한 본래의 얼굴이 러나더니까요.


이런 담백한 작업에도 고충이 . 소일이라고 대놓고 무시하거나 청소도구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은 곳에서의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혹 소수의 사람들에게 시하는 선의 폭격을 맞거나 인간 청소기로 급당하는 일은 일도 아니네요. 그것보다는 다른 게 저를 힘들게 하고 있었어요. 지난주에 가볍게 읽던 책에서 저는 답을 찾았죠.


물질과 욕망과 월급으로부터의 자유를 소망하던 이나가키 에미코는 삶의 경험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서서히 퇴사를 준비해요. 그리고 드디어 아사히 신문의 사회부 데스크를 마지막으로 꿈을 이룹니다. 그녀의 미니멀한 삶이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 책 '퇴사하겠습니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무엇보다 지금은 어딜 가나 일손이 부족해서 구인 광고가 넘쳐나고 벽에 붙은 걸 떼어가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아무리 요령 없고 경험 짧은 중년의 여자라도 이것저것 따지지만 않는다면, 어디서든 아르바이트가 가능합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하나부터 배울 각오를 한다면, 직업 스킬은 조금씩 몸에 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 쓸모없는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힘! 내게 그럴 힘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이 없다면 그런 힘이 생기도록 노력해야죠!
P.97



참 부러운 시선으로 읽어 내려가며 앞으로의 내 삶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던 책이에요. 그러면서 저를 가장 힘들던 건 제 안에 있던 쓸모없는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의미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청소 알바를 하면서는 왜 그 의미를 사람들의 시선 따위에 먼지처럼 쓸어버렸을까?


평소에 저는 의미는 위아래로 줄을 세우는 게 아니라 '나란히 놓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일의 의미가 다른 일의 의미보다 높거나 낮은 것이 아.

사람도 그렇다고.

평생 존경을 받아온 국작가 루쉰의 본처인 주안. 녀가 루쉰 집안의 하녀처럼 그림자의 삶을 살았고 그녀조차도 자신을 루쉰의 물이라고 칭하며 살아왔다는 점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당시에도 그녀의 삶을 땅바닥을 오가는 땅강아지나 개미처럼 생각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진실이 그런 것은 아니지요.

세상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만의 우물을 퍼올리는 영롱한 사람들있잖아요.

아픈 족을 돌보는 사람들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의미덩어리라고 믿으니까요.

그 자리에 나 같은 어리바리 청소노동자 하나쯤 끼어있더라도 의미가 바래지는 않겠지요.


, 여기까지 쓰고 나니 엉엉 울었던 제가 이해되면서 이젠 엉엉 울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아무 데도 쓰이지 않는 자존심이 잠시 구겨졌지만 저는 점점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씻어지고 치워지는 청소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고 작은 일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제가 돼 보려고요. 가족들은 모르는 제 청소취미를 이렇게 의미 찾기용으로 사용하고 옳지 않은 시선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려고요.


그러니 제 가족들에게는 당분간 비밀 지켜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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