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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력 Nov 11. 2024

잊히면 안 되는 이름 -12화

"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

동석이 아버지가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헛 걸음을 한지 며칠 째였다. 동석엄마는 동석이 아버지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우리 할머니를 찾아왔다.

"아주머니, 이장님 언제 집에 오셔유?"

"내야 모르지. 자네가 무슨 관심인가?"

"아주머니, 모르시는가 보네유? 서에 동석이 아부지 심부름으로 들렀댔슈. 근디 글씨, 벽보가 쫙 붙어있던디 거기 최고 악질 숙청대상자라나 뭐라나 이름이 쫙 써 있더라구유."

할머니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동석 엄마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동석엄마도 할머니를 더 이상 마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그래서?"

"그 맨 위에 이장님 이름이 떡허니 적혀 있었소. 그 숙청이 뭐래나? 죽이는 거래요"

동석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안 그래도 할머니는 마을 유지들이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했느니 어쩌니 하는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만을 듣고도 정신이 아뜩했는데, 막상 아들의 이름을 들으니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보였다.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아들이 돌아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동석엄마는 마당 밖을 두리번거리더니 재빨리 소곤거리며 신을 신었다.

"아줌니, 오늘 저 여기 안 온 거여요. 아셨쥬?"


정숙이와 나는 동석엄마의 말을 엿듣고는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진 동석엄마의 뒷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루에 무릎을 부딪치며 주저앉은 할머니를 발견하고서야 우리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할머니를 부축하려 달려갔다.





이튿날이었다.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할머니를 대신해 나와 정숙이 땅에 묻어 둔 항아리 속에서 잡곡이 섞인 쌀을 꺼내 밥을 짓고 있었다. 항아리를 흙으로 다 덮기도 전에 누런 옷을 입은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노인네 끌어내!"      

언제 나타났는지 동석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사내들은 군화를 신은 채로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가서 버선발인 할머니를 마당으로 질질 끌고 나왔다.

“아이고, 이놈들아. 왜 이러는 겨?”

나는 무서워서 아주 작은 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으나 정숙이는 밥주걱을 들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우리 할머니는 아무 잘 못 없어요! 아저씨들, 아부지 오시면 제가 바로 알려드릴게요. 할머니는 지금 편찮으시다고요!"

동석이 아빠는 정말 아파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과 뼈와 가죽밖에 없는 창백한 모습에 잠시 흠칫했지만 며칠 전 부모 운운하면서 혼났던 일이 생각났는지 입을 앙 다물고 더 큰소리를 쳤다.     

“뭘 꾸물대! 끌어내! 어제까지만도 쌩쌩하더니 무슨 수작이야!”

할머니는 반항할 기력도 없어 보였으나 그 와중에 나와 정숙이에게 가까스로 당부를 했다.

“연임아, 정숙아, 동생들하고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할머니 금방 갔다 올게. 알았지?”

나는 목소리도 못 내고 고개만 끄덕인 다음, 어린 동생들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얼른 방문을 막아섰다. 정숙이는 할머니 머리에서 떨어진 비녀를 주워 들고 할머니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할머니, 빨리 와야 해!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응?”

정숙이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비녀가 빠져나간 백발의 긴 머리를 슬프게 늘어뜨린 채, 할머니는 버선발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그날 밤도 이튿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런 옷을 입은 남자들이 우리 집 마루며 안방이며 모두 차지하였다. 마당에 묻어 둔 쌀독도 전부 그들의 것이 되었고 이제 집도 쌀도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대문과 가까운 문간방으로 밀려났다.   

    

동수엄마가 찾아왔다. 누런 옷을 입은 남자들과 완장을 찬 동수 아버지는 나가고 없었다. 동수엄마는 죽을 쑤어왔다. 누런 옥수수죽이었다.

“자, 할머니한테 갔다 드려라. 할머니 얼굴도 한 번 보고.”

“아줌마, 우리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동생들은 옥수수죽 냄새에 허기가 돌았는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동수엄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금세 아이들이 먹을 죽을 더 가져왔다.



동생들을 대충 먹인 후 나와 정숙이는 밖으로 문을 잠그고 할머니가 있다는 서로 달려갔다. 벽보에는 정말 아버지 이름이 제일 첫 장 맨 위에 적혀있었다. 심장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그 북소리는 나의 머리와 귀와 온몸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언니, 정신 차려!”     

서 입구에 완장을 차고 거만하게 서 있는 가지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정숙이가 야무지게 그를 불렀다. 나는 죽그릇을 들고 나도 모르게 벌벌 떨고 있었다.

“아악!”

할머니의 음성이었다. 가지아저씨가 대답대신 우리들을 가로막았으나, 우리는 할머니의 소리가 나는 쪽이 어딘지 놀란 토끼 눈으로 발은 벌써 달음질하고 있었다. 의외로 바로 문옆이어서 우린 가던 발을 멈추고 할머니를 한눈에 찾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큰소리치던 작자들이 이 힘없는 노인에게 저지르는 만행을 정면으로 목격하였다. 그 조선신보에서 평등을 외치던 자들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건가? 사람이 어찌 사람을 어찌 저리 짐승처럼 다루고 있단 말이냐!

할머니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한 남자가 할머니의 콧구멍에 고춧가루를 넣고 물을 부었다.

“고춧가루가 아깝다, 아까워. 아들 어딨어? 그 한 마디만 하면 살 건데 이 무슨 고집인 게야?”

그때, 가지아저씨가 갑자기 나섰다.

“자, 자, 좀 쉬었다 하시게. 애들이 지들 할미 면회를 왔구먼.”

내가 억울함과 두려움에 눈물을 줄줄 쏟고 있으니 정숙이가 내 손의 죽 그릇을 빼앗아 들었다. 풀썩! 할머니는 건드리면 바사삭 부서질 것만 앙상한 몸으로 지푸라기를 깔아 놓은 바닥과 처음부터 한 몸이 이었던 것처럼 그 위에 꺼져 들어갔다. 떨어지는 소리도 없었다.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허연 미역줄기처럼 떡진 상태로 얼굴 위로 드리웠다. 그 백발 사이로 우리를 보고 반갑고도 체념한 듯한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지푸라기를 깔아놓은 그 방은 침실이자 화장실이었다. 구석마다 매를 맞았는지 어떤 짓을 당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미동도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의 옷에 말라 붙은 또는 오늘 터져버렸을 수도 있는 비릿한 피냄새와 대소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깔끔한 할머니가 이런 곳에서 이런 미개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니!

“5분 시간 잴 거니까 줄 거 빨리 주고 가라.”

가지언니네아저씨는 선심이라도 쓰듯 우리를 재촉했다. 할머니는 그 장작개비 같은 손가락을 간신히 펴서 우리 얼굴을 차마 쓰다듬지 못하고 마른 샘에 봇물 터지듯이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여 가. 다들 잘 있지? 여그는 너희가 올 곳이 못된다.”

“할머니...”

우리는 가슴이 미어져서 숨도 잘 쉴 수가 없었다.

“느이 아버지 오면 할머니 나갈 수 있으니까 기억해라! 그건 내가 약속한다!”

가지언니네아저씨가 큰 소리를 치자 옆에 서 있던 이사이가 모두 떠 있는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래그래. 내가 도와줄게.”

나쁜 자식! 이게 웃을 일인가? 아버지를 꼭 잡겠다는 수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태도를 바꿔 공손히 대답했다.

“아버지 오시면 저희가 꼭 여기 오시게 할게요. 그러니 그동안 우리 할머니 조금만 돌봐주세요, 네?”

돌봐줄 거라는 믿음이 없음에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숙이와 내가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는데 가지언니네 아저씨가 이 듬성듬성 아저씨를 마구 혼냈다.

“뭘 도와주겠다는 거여? 반동새끼들 도와주면 그 새끼도 반동인 거 몰라?”

“잘 못 했어요. 삼촌.”

“어휴, 반푼이 같은 자식!”

아, 가지언니네 오빠가 일본군으로 징병당해 갈 때 바보 조카 하나는 안 끌려가고 살아남았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그 사람인가?

할머니, 아버지, 식구들 생각으로 눈앞이 캄캄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에서는 작은 기억의 퍼즐들이 휘리릭 들어맞았다. 가지언니네 아저씨도 자기 혈육이라고 저렇게라도 목숨을 부지시키려는 건가?          



이지경이 되고 보니 동수도 쉽게 우리를 찾지 않았다. 찾지 못하는 걸까? 사실 동수 생각은 사치였다. 아버지 엄마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가시는 길은 안전했을까? 목적지까지 도착은 했을까? 거기서도 저런 인간들을 만나지는 않았을까? 온갖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정숙이는 내 마음을 알고라도 있는 듯 더 단단한 모습으로 우리 네 자매를 지키려고 애썼다. 우리는 항상 방문을 잠그는 것이 중요한 습관 중 하나였다. 이제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잠결에 우악스러운 팔이 나를 끌어안았다 놓았다는 걸 알았다. 남자의 형체였다. 어떻게 들어왔지? 분명히 문을 잠근 것 같았는데? 검은 형체가 이번엔 정숙이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가 아무리 겁쟁이이지만 정숙이를 넘보는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생각으로 머리 위에 할머니가 사용하던 퇴침을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그때, 재빠르게도 그의 손이 나의 손목을 잡았다.

아부지!” 정숙이의 속삭임과 함께였다.

아, 꿈에 그리던 아버지였다. 아버지!
 “쉿! 아직 아부지의 존재를 알리기엔 일러. 할머니는?”

정숙이와 나는 동생들이 깨어날까 조심하며 서에 끌려가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 이럴 줄 알고 와 본거야.”

아버지의 양쪽 이마에 굵은  혈관이 올라왔다.

아부지, 엄마는요?”
엄마는 동생들 이마를 하나하나 쓰다듬고 있다가 우리와 아버지와의 간격이 생기자 정숙이와 나를 두 팔로 가득 끌어안았다. 엄마 품이라니, 꿈만 같았다. 나는 엄마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듯했다.

아부지, 서에 아부지 이름이 있어요. 가시면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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