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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력 Nov 24. 2024

잊히면 안 되는 이름 - 13화

"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꼭 다시 돌아올게


엄마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반가운 마음은 잠시였고 두려움이 물 밀듯이 머리끝부터 손가락 발가락 끝에 있는 신경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닿았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이리도 미리 질려서 손가락 하나도 못 움직이고 있는 걸까? 얼굴이 새 하얘져서 문간방 구석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심약해서야 어찌 삶을 이어가겠는가라는 생각은 뒷전이고 엄마 아버지 걱정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런 나를 두고 정숙이와 다른 동생들이 오히려 의젓했고 큰 언니를 오히려 걱정하고 있는 게 역력했다. 어린 동생들은 말없이 다가와 힘없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내 이마를 짚어주거나 뺨을 쓰다듬었다. 부모를 잃게 되면 이 어린것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하며 괴로워했다. 엄마 아버지는 누런 옷을 입은 사내들이 서로 출근을 하기도 전에 먼저 서로 달려갔다. 정숙이는 엄마가 당부한 대로 우리들의 옷가지들을 보자기에 꽉꽉 눌러 챙겼다. 아버지는 서에서 돌아오지 않으셨고 대신 엄마가 수척해진 할머니를 부축한 채 문간방 문을 열었다. 엄마는 젖은 수건으로 할머니의 야윈 몸을 구석구석 닦았고 활동하기 좋은 몸빼바지로 옷을 바꿔 입혔다. 엄마와 할머니는 어디서 났는지 지폐를 우리들의 속 옷에 꿰매어 한 사람씩 그 옷을 입히고 겉옷으로 속옷이 잘 드러나지 않게 허리에 옷 보따리를 메어주었다. 할머니는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엄마가 하라는 대로 척척 움직였다.

"엄마, 우리 어디 가?" 

혜자, 순자, 봉숙이가 입을 모아 물었다. 엄마는 손가락을 입술 위로 포개며 눈 짓을 했다.

"쉿!"

그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런 모자를 쓴 머리 하나가 방안으로 쑥 들어왔다. 우리는 숨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숙이와 내가 서에서 만난 이 듬성듬성 아저씨인지 총각인지가 듬성듬성한 이 사이로 숨을 들이쉬고 내 쉬면서 엄마에게 한 마디 했다. 

"아줌니, 이장아저씨가 내일 아침 일찍 죽.. 지는 않고 군대 간다요. 군대. 나랑 똑 같은 옷 입고 간다요."

"뭐, 군대?"

인민의용군 징집은 북한군이 한국전쟁 초기에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전쟁에 참여시킨 사건이다. 북한군의 병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강제 징집 조치였는데, 북한군이 빠르게 남한 지역을 점령하면서 전투 인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북한군은 점령한 지역의 주민들을 조직적으로 징집해 인민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편성했는데, 인민의용군은 북한 정규군과는 달리 훈련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최전선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마을에서도 지역 주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불응할 경우 가족이나 자신이 처벌받을 것이 자명했다. 주로 1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학생, 농민, 노동자 등이 강제 동원되었다. 일부 주민들에게는 "조국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설득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끌려가야 했는데, 우리 아버지도 그 대상 중 한 사람이 된 것이 분명했다. 

할머니가 그의 손을 덥석 잡더니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디로 간다는 얘기는 들었고?"

"몰라요.이장 아저씨가 아줌마 보고 거기로 오랬어요."

이 듬성듬성 아저씨는 엄마를 향해 어눌한 말투로 소곤댔다.

"거기? 거기가 어딘데?"

할머니가 답답한 듯 잡은 그의 손을 흔들면서 물었다.

"동틀 녘 거기라고 했어요."

이 듬성듬성 아저씨는 할머니의 물음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엄마는 그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너도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고맙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엄마가 감사의 말을 전하는 동안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약과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이 듬성듬성 아저씨가 좋아라 뛰어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누런 옷의 사내들이 일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숨죽여 자는 체를 허였다.

"그 이장, 지 어미 대신 목숨값 하러 내일 총알받이로 떠난다는구먼?"

우리 일곱 식구는 촛불을 끄고 이불을 이마까지 덮고 누워서 땀이 나고 답답했지만 참았다. 그리고 밖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가 우주 작은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소곤댔다.

"모두 일찍 자야 해. 낼 엄마가 깨우면 바로 일어나야 해. 어디 갈 건데 비밀이니까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되고, 자 얼른 다들 눈 감아!"






엄마는 동이 트기도 전에 식구들을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는 사명감으로 가득 찬 사람처럼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재빨리 움직였다.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에게 자세히 설명할 여지가 없었음이 분명했다. 단호하게 행동하는 엄마와 할머니의 결연한 표정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들의 표정은 나처럼 표류하는 불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우리들의 다른 신발들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방문 앞에 늘어놓았다. 이불도 뭉쳐서 놓은 후 다른 큰 이불로 덮어 놓아 방문을 열고 언뜻 보면 사람이 자고 있는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자고 있는 봉숙이는 엄마가 업고 할머니는 혜자와 순자의 손을 잡고 등에는 봇짐을 지고 있었다. 정숙이와 나는 최대한 짐을 많이 감당하려고 봇짐들을 허리에 묶기도 하고 아기 업듯 등에 얽어매었다. 엄마는 봉숙이를 업고 짐을 가슴께로 묶고 양손에는 간밤애 동석이 엄마에게 꾸인 어설픈 주먹밥을 손잡이가 있는 국솥에 담아서 들고 있었다.


집을 몰래 빠져나온 우리는 왠지 익숙한 길로 우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길은 전에 엄마 아버지가 떠났던 그 길이 맞는 것 같았다. 한 참을 걷다 보니 구역질 나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심하게 부패가 된 시체에는 날파리 같은 것들이 들끓었다. 나는 보따리로 입과 코를 눌렀다. 벌써 다리가 아파왔다. 다른 식구들도 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보다는 빨랐다. 식구들은 저만치 가고 있었고 나는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숙이가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나를 끌고 가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다시 걸음이 쳐지고 바닥에 주저앉고 싶어진 그때였다. 누런 옷을 입은 사내가 우리를 향해서 달음질쳐 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엄마가 그를 맞이하고 사내는 모자를 벗어던졌다. 아버지였다.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아버지는 군복을 벗어젖히고 엄마가 내어주는 아버지 옷으로 갈아입었다. 할머니는 아들의 등을 연신 쓰다듬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아버지는 군인수송차에서 뛰어내려 언덕으로 굴러서 엄마와 약속한 장소로 달려왔다고 했다. 같이 탔던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의용군들을 감시하던 이 듬성듬성 아저씨는 모르는 체 "고라니인가?"라며 얼버무렸다고 한다. 군용차에서 뛰어내린 아버지는 언덕 아래 패인 구덩이에 시체들과 한 몸이 되어서 군용차들이 전부 제 갈 길 가기를 기다려 정신없이 식구들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식구가 모이게 된 때는 한 낮이었다. 숲을 지나가는 터라 그나마 나무그늘이 있었음에도 7월의 무더위는 물 한 모금을 간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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