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정답은 철학이야
살면서 처음으로 철학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폰을 만든 기업, 애플 때문이었다.
기술이 평준화된 시대에 기업들이 마땅히 집중해야 할 것은 가격 경쟁력일 텐데, 애플은 그런 흐름을 비웃기라도 하듯 높은 가격 정책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8월 1일 기준으로 애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회사 아람코를 제치고 세계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애플을 찬양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궁금증이 생겼을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애플 제품에 대한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것일까?
어떤 현상의 원인을 ‘철학’이라는 틀로 생각해 본 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전자제품과 철학이라니. 어딘가 극과 극처럼 느껴지지 않나?
그런데 막상 관점을 열고 다시 살펴보니, 놀랍게도 그 중심에는 철학이 있었다.
제품의 디자인부터 앱스토어 운영 방식, 그리고 가격 정책까지.
애플의 거의 모든 것에는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철학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
결국 기술이 최고점에 근접해 가는 이 시대에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열쇠는
가격이 아니라, 그 제품만이 지닌 고유한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게다가 최근 읽은 몇 권의 ‘부(富)’에 관한 책 속에서도
성공한 기업가들이나 리더들의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철학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
[철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무언가를 특별하고 굉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느닷없이 철학 입문서를 찾아 읽었다.
내 수박 겉핥기 기질상 깊이 파고들 리는 없고, 그냥 철학이란 게 뭔지 감이라도 좀 잡아보고 싶었다.
하필 이 책을 집어 든 건, 예전에 『수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를 읽은 적이 있어서 비슷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단순한 선택, 늘 그렇듯.
두 번이나 읽었지만 역시나 철학자의 이름이나 용어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왜 철학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에게 그토록 특별한 힘이 되어 작용하는지는, 아주 조금은 감이 잡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가 개인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인 행위라고 주장한 『소비의 사회』의 저자,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차이적 소비’ 개념은 꽤 인상적이었다.
이건 이 책의 첫 번째 담론인 ‘시기심’을 다룬 니체의 ‘르상티망(resentiment)’ 개념과도 연결된다.
이런 지점들이 철학이 가진 인간 통찰의 깊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나라는 한낱 개인이 그 허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찔러오는 순간, 기분이 좀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50명의 철학자 이야기 속에는, 얼핏 보면 다른 얘기 같지만 결국 비슷한 핵심을 공유하는 대목들이 꽤 있다.
예컨대 ‘서로 반대되고 다양한 의견 수렴이 최고의 의사결정을 만든다’는 주제는 네 명의 철학자—존 스튜어트 밀의 ‘악마의 대변인’, 헤이르트 호프스테더의 ‘권력거리’,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 장 자크 루소의 ‘일반의지’—를 통해 각기 다르게 다뤄진다.
또 ‘인간은 불확실성에 의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통찰은 세 철학자의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에드워드 대시의 ‘예고된 대가’, 장 칼뱅의 ‘예정설’, 그리고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의 ‘강화이론’ 같은 것들.
한편으로는,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앙가주망(engagement)’ 하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을 읽다가 며칠 전 유튜브에서 봤던 인터뷰가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범행 당시 “100% 솔직했고 완전한 자유를 경험했다”라고 말하던 연쇄살인범. 그 자유라는 게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문득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34번째 철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가 말하는 ‘공정’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는 결과적 평등을 둘러싼 혼란과도 묘하게 겹쳐졌다.
덕분에 그 철학 한 줄이 제법 무겁게 마음에 걸렸다.
공평한 사회일수록 차별에 의한 상처가 깊다.
우리의 조작과 사회에 공정성이 실현되지 않는 유력한 가설은
본심은 그 누구도 공정 따위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차별은 이질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동질성이 높기 때문에 발생한다.
<본문>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을 자꾸만 선하게만 포장해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그 점을 이용해 선동이 가능한 부작용을 낳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원래 선하기에 완벽한 세상이 가능하다는 거짓말에 그토록 쉽게 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불편한 진실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가 가능하고 완벽할 수는 없어도 점점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해갈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라는 것이 결국 내가 늘 맞대고 살아야 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탐구인데 그걸 간과하고 살면서 더 나은 세상과 인간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이 뭔가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오랜만에 책 한 권이 주는 묘한 포만감을 느꼈다.
무려 50명의 철학자가 남긴 지혜를, 소화 잘 되게 요리해 낸 저자 덕분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서문에도 밝혔듯, 철학 입문자들이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철학자와 사상을 신중히 골라 담고, 지금 이 시대에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로 간결하게 구성하려는 저자의 철학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나 같은 사람은 아마 초반 몇 페이지 읽다 체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