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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송 Feb 23. 2023

#4. 5일 동안 15번의 공연을 하다

네 번째 수기

공연 전날. 리허설을 하는 날이다. 공연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친구랑 '내 가방에는 무엇이!'를 찍어봤다. 숙소에만 있어야 해서 조금은 심심했다.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시시덕거리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올해를 기준으로 우리는 벌써 10년 지기다. 항상 고마워 친구야:)




소박하게 조식을 먹고 간식을 사러 호텔 근처 작은 마트에 왔다. 편의점도 좋지만 나는 이런 개인 슈퍼가 좋더라. 정답다. 간식거리들만 살 거지만 그래도 다 둘러봤다. 새로운 것들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두바이 요거트 맛나다. 그리고 밑에 보이는 과자는 피스타치오 맛인데 너무 내 스타일이다. 두바이에 가시게 된다면 드셔보시길 권한다. 너무 맛있어서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굉장히 중독성 있다.




이 사진은 자유롭게 상상해 보시면 좋겠다. 상상은 자유니까.




두바이는 지하철 역도 뻔쩍뻔쩍하다. 이날도 밤에 리허설을 했는데 다녀오니 하루가 끝나버렸다.  








공연 당일 오전.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어서 급한 대로 입고 있던 옷을 뒤집어썼는데 지금 보니 가오나시 같다.



야외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이라 비가 오면 아주 난감해진다. 공연 때도 비가 오면 준비해 온 작품 전체를 하지 못하고 몇 작품만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공연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가끔씩 일어난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이럴 때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비가 멈췄고, 원래대로 리허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리허설 중에 다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금방 그쳤다. 차질 없이 공연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의 첫 번째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1월 16일. 두바이 엑스포장에서 열린 '한국의 날' 행사였다. 화관무, 부채춤, 장고춤, 검무 등 한국 전통무용을 비롯해 K-타이거즈 태권도 공연, K-POP 가수 스트레이키즈의 공연을 한 무대에서 선보였다.


의상을 빠르게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사방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야외 공간에, 환복 할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아서 한복 두벌을 겹쳐 입고 공연을 했다. 다음에 할 작품의 옷을 안에 먼저 입고, 그 위에 첫 번째 작품의 옷을 입었다. 방법을 찾으면 안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당시엔 조금 황당했지만 이것 또한 경험이라 생각되어 이 상황마저도 즐거웠다. (몸이 조금 부해 보였을 순 있겠지만)




중간에 장구 솔로 부분이 있었다. 콘티 초안으로 보면 이 부분은 다른 분의 파트이다.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변동 상황이 생기면서 갑작스럽게 내가 맡게 되었다.


장구는 허리가 잘록한 나무 통의 양면에 가죽을 대어 만든 한국 전통 악기로, 다른 악기들과 다르게 음이 없고,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여 연주를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나에겐 이 부분이 참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같은 장구여도 사람마다 다르게 연주되고 소리 날 수 있다.)


장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장고춤을 추기 위해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언니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 매일같이 혼자 연습을 했던 게 오히려 나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장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악기이자 평생 함께하고 싶은 나의 춤 동반자이다.




#에피소드 1


장고춤과 태권도 공연이 끝나면 스트레이 키즈의 '소리꾼'이 무대를 이어간다. 퇴장 후, 나는 다시 하수(객석 기준 무대 왼쪽 방향) 쪽에서 등장을 하게 되는데, 퇴장은 상수(객석 기준 무대 오른쪽 방향) 쪽으로 하게 된 상황이었다. 전력 질주를 해야 했다. 무대 뒤편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멀리 돌아가느라 다음 등장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까 하고 뛰는 내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공연 전에 갑자기 등퇴장 위치가 바뀌어서 리허설도 못해보고 공연을 하게 된 상황이라 더욱) 무대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행히 시간 내에 도착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면 아마 무대에 못 올라갔을 거다. 뛰어가다가 한 번 넘어졌어도 아마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



 저녁 식사 후에는 콘서트 관람을 했다. 이날 K-pop의 인기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낮에는 정신없이 공연하고 밤에는 또 열심히 공연을 즐겼다. 축제 같았던 하루, 가슴이 웅장해지는 하루였다.








그다음 날. 출근.

4일 연속, 하루에 공연이 4번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이틀은 공연이 3번으로 줄어들어 조금은 살만했다.




야외 공연이다 보니 울퉁불퉁한 돌바닥과 시멘트 바닥에서 춤을 춰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무릎이 좋지 않은 친구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딱딱한 바닥에서 뛰고, 돌고, 춤을 추다 보니 그 충격이 무릎과 관절, 발목에 그대로 흡수되어 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나마저도 다리가 뭉치고 아파서 수시로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했다. (다리야 정말 고생이 많았다.. )





#에피소드 2

외국인 관광객분이셨는데, 그분이 잊히지 않는다. 그때의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공연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그 여성분을 처음 뵌 건 낮에 리허설을 하면서였다. 보통은 공연이 아니면 잠깐 보고 지나가시는데, 공연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은 긴 시간 진행된 리허설을 끝까지 관람하셨다. 아주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보는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미소였다. 열정적으로 박수도 쳐주시고, 퇴장하는데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시면서 박수와 함께 인사를 보내주셨다.

 


리허설이 끝나고 그곳에서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낮에 뵌 여성분께서 아까와 같은 표정을 지으신 채, 맨 앞줄에서 공연을 즐기고 계셨다. 큰 공연장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을 직접 보고 느끼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야외 공간이나 소극장에서는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분위기를 느끼며 춤을 출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덕분에 나 또한 행복하게 춤을 추었다. 긴 리허설을 보시고도 공연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두 시간 후에는 다른 장소에서 공연이 있었다. 대형 체크를 위해 공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아까 뵌 여성분이 그곳에 또 계셨다. 낮에 공연을 한 장소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더 놀랐다. 공연을 또 관람하고 싶으셔서 다음 공연 정보를 찾아보시고 와주신 거였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아름답다고.. 좋은 공연을 보여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여러 번 말씀해 주셨는데, 그 진심이 전해졌다.. 나까지 감동을 받았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어드렸는데, 인스타 아이디라도 여쭤볼걸..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까지도 이때만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소중한 순간이다.




마지막 퇴근길에 한컷

공연을 한 5일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마지막 만찬

PCR검사까지 마치고 숙소에 오면 대부분 늦은 시간이어서, 거의 저녁을 야식 먹는 기분으로 먹었다. (저 치킨은 교촌 허니콤보랑 맛이 거의 흡사했다) 피곤해도 다 같이 모여 앉아 맛있는 거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이 소소하지만 정말 확실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채운 것 같다. 이번 나의 겨울방학이 더욱 의미 있어졌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바이 엑스포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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