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우 Aug 21. 2022

투박하거나 생채기 난 것들을 아끼는 마음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

 취향은 인간 그 자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이래저래 따지고 보니 그의 말은 얼추 맞는 것도 같다. 취향, 그러니까 내가 나의 의지대로 반복적으로 취하는 행동이, 남들 눈에나 나의 눈에나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보일 테니까.

스물여섯 해의 낮과 밤을 부지런히 오가며 '나 그 자체'인 삶의 취향들을 쌓아왔다. 때론 사랑 안에서, 더 빈번하게는 사람들 곁에서 겪은 적잖은 아픔과 기쁨, 쓸쓸함과 충만함은 모두 내게 나름의 의미들로 남았다. 그 의미들 틈 사이에 때론 넘어지거나 더러 그것을 넘어서며, 나만의 고유한 취향이 조금씩 넓고 두터워졌다.  

 

 모두가 잠든 밤, 스탠드불에 의지한 채 유재하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글을 쓴다. 왠지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 더 잘 보일 것만 같다. 간헐적으로 커피를 홀짝인다. 밤이 더 깊은 날엔 한 잔 술을 홀짝인다. 한 모금에 따뜻했던 기억 한 자락을 떠올린다. 다정했던 사람들과 오래된 노포들과 굽이진 골목길 따위를 생각하며 한낮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렇게 나는 나만의 취향을 반복하며, 나다운 나를 완성해간다.

 

 나의 취향을 완성해갈 수록 다른 이의 취향에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자기 나름대로 삶의 부침을 겪으며 완성했을 타인의 취향에 문득문득 호기심이 생긴다. 이내 타인의 취향에서 나의 취향과 닮은 구석을 자꾸만 찾아본다. 팔은 역시 안으로 굽는지, 닮은 구석이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내 취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괜스레 인정받는 기분이랄까.


 나와 닮은 구석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랬다. 나처럼 빛바랜 노래들을 좋아하는 사람. 사람 간에 오가는 다정한 눈길을 사랑하는 사람. 아주아주 오래되어 허름해진 가게에 둘러앉아 먹는 소박한 밥 한 끼를 아낄 줄 아는 사람. 화려한 네온사인보다, 굽이진 골목길에 카메라의 셔터와 필름을 기꺼이 헌납하는 사람. 조용한 천변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시답지 않은 말들에 온몸으로 호들갑을 떨 줄 아는 사람. 멋들어진 술집의 비싼 양주보다, 누추한 길가에 걸터앉아 여름밤 냄새를 맡으며 홀짝이는 한 모금 술의 낭만을 좋아하는 사람. 휘황찬란한 옷차림보다 수수한 티셔츠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투박하거나 조금 생채기 난 것들을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 정도가 되겠다.

그런 사람과 마주할 때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 말이 꿈틀거린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그녀)에 나오는 이 대사를 들으며 나는 홀로 여러 번 곱씹었다. 난생처음 들어본 저토록 생소한 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하고. 살아가며, 내가 누군가에게 저 말을 건넬 날이 과연 올까 하고.

그런데 이 말을 건넬 날이 참 많이 쌓이는 요즘이다. 근래 가까워진 한 미술가는 서울 시내의 여러 백반집을 주제로 한 권의 사진집을 완성했다. 서울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카메라에 담은 백반집의 풍경들. 깨어진 수저통, 빛이 바랜 휴지함, 긁히고 상처 난 상 위에 차려진 소박한 반찬 등, 낡고 투박한 것들을 향한 그녀의 따뜻한 취향이 나로 하여금 영화 속 대사를 읊조리게 한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


 그녀가 사랑하는 한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헝클어진 머리와 수수한 낯빛으로 건네는 다정한 웃음이 참 무해하다. 모난 데 하나 없이 주변 모두에게 친절로 일관한다. 눈치가 빠르고 영민해 상대방의 모나고 부족한 구석을 누구보다도 잘 알 테지만, 결코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도 나는 말한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


 돌이켜보니 이 둘 외에도, 내가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랬다. 내 책에 자주 등장하는 P형과 H형도, 나와 한결같이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는 '미미'시스터즈도, 바쁜 시간을 애써 맞추어 술과 밥을 함께 나누는 친구 녀석들(너 맞을 걸?)도, 무엇이든 아낌없이 퍼주고 싶은 후배녀석들도, 여러모로 존경하는 많은 선배들도, 이런 나를 길러낸 부모님도... 이들은 모두 투박하고 부족한 것들에 다정한 눈짓을 건넨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깎이고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그들의 은근한 흥미를 건넨다. 따뜻한 그 사람들은 늘, 자신들과 같이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풍경들을 찾아 나선다.


 오래도록 한결같은  사람들과 오래도록 한결같은 관계를 이어나간다. 세련됨으로 치장한 세상이 감춰둔 날카로움에 마음이 베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들을 찾는다. 버텨내기 위해 나를 감추던, 가식이라는 가면을 벗고 그들이 풍기는 사람냄새, 그들이 건네는 다정과 친절에 다시 베인 마음을 기워낸다. 그들과 만난  허청허청 집으로 돌아간 그날엔 이완된 몸과 마음을 붙들고 스르륵 잠에 든다. 다음날 눈을 뜸과 동시에 속으로 생각한다. 역시 투박하거나 생채기  것들을 아끼는 당신들의 취향이 나는  편하다고. 당신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고. 나는 당신들의 곁이 언제나 좋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들도 나의 곁에서 편안함을 느끼길 진심으로 바라므로, 이런 나의 취향을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우리 함께 우리의 취향을 지켜나가자고.


  


        


 

 



  


작가의 이전글 <시선이 머무는 밤> 초판 절반 판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