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워킹맘의 바깥 육아 이야기
내가 신혼집을 꾸리고 약 4년간 살았던 주공아파트는 1983년에 지어진 집이다. 연식이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로 평수도 넓지 않았고, 시설도 '생각보다' 많이 낙후되었다. 전셋집이지만 신혼집이었기에 도배, 바닥, 심지어 화장실 수리까지 하고 집에 입주했다. 하지만 녹물과 한여름 수도배관 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한 달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을 때면 곤혹스러웠다.
같은 광명시였지만 철산동에 주로 살았던 내게 하안동은 낯선 동네였다. 적당한 가격대의 전셋집을 찾다가 이곳에 입성했고, 나는 17평 에서 약 4년을 살았다. 신혼일 때는 둘이 살기에 적당하다고 느꼈지만, 아기가 태어나면서 이곳은 우리 가족 셋과 아기를 봐주시려고 오셨던 어머님 네 사람이 살기에는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가 3살 즈음 철산동으로 집을 넓혀 이사를 해야 했다.
집은 비록 넓어졌지만, 이사 간 곳은 아이를 키우기에는 이전 동네보다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안양천과 사성공원, 근린 체육시설 등이 근방에 있었지만 도서관, 대형 마트, 체육관, 다이소 등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게다가 주변의 집과 상권은 재개발로 인해 모두 철거된 상태였다)
이 전에 살던 집은 집을 나오면 바로 산책길과 작은 뒷산 (철망산)이 연결되고, 산책길을 따라 5분을 걸으면 도서관이 나왔다. 대단지 아파트였기에 곳곳에 놀이터가 있었고, 집 바로 앞에 마트와 편의점이 있어 아이와 자주 가곤 했다. 10여분을 걸으면 대형마트와 상업시설이 즐비한 상업지구가 나왔다. 산책길을 따라 5분을 걸으면 광명에서 가장 큰 체육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5분을 걸으면 생태공원이 나왔다. 10분 이내 즐길거리가 많은 동네였기에 '바깥 육아'를 하기에는 완벽한 동네였다.
토요일 아침에는 뒷산에 오르고, 일요일 아침에는 체육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근처 상업지구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간단히 요기할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고는 집 앞 도서관의 유아 도서실에 가서 아이와 책을 읽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열심히 타고 오면 아이는 슬슬 피곤해하며 낮잠을 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 느낌이지만 생각보다 몸은 고되지 않다. 집에서 복작복작 거리며 아이의 요청을 충족시켜주려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야 하는 게 더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 당시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이 동네를 추천하곤 했다. 역에서 10여분 버스를 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중에 아기가 태어날 것을 고려한다면 꽤 괜찮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세 비용도 꽤 합리적이었던 편이었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올라도 너무 올라버렸다)...
가끔 아이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가자고 말한다. 그곳에서 자주 갔던 마트며 놀이터를 아이는 기억해서 말해 준다. 그래서 가끔은 그 동네에 가서 아이가 놀던 대로 산책길을 걷고 고양이와 장난을 치며,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옆 놀이터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그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내게 어린시절 시골집에서의 추억을 기억하듯, 5살 아이는 이 동네에서의 추억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