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주복을 입으며

by 은복희

입어볼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옷을,

걸어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길을


다 이 아이를 통해

이 자리에 왔다


아직은 이것이

내가 맛봐도 되는 달콤함인지

망설이며

손으로만 만지작거린다


자식은 내 마음대로 안된다던데

쓰디쓴 한 문장에

이 달콤함도 포함되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고되었던 지난날을

그리 가엾어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미안함이 옷깃에 묻는다



엄마, 장모,

그리고 할머니.


나의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내게 쥐어주는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이의 성장으로

나의 세월을 인지한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


아니 어쩌면

첫울음을 기다리던

그때부터라면

이것 또한 나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걸어가 밝힐

이 불은

너의 앞길에 위로가 되어줄 작은 촛불이자

너의 새로운 땅에 뿌릴 재를 위한 큰 불씨


이제는 이 따뜻한 달콤함을

천천히 음미하며

너의 새로운

가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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