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얼굴에서 무엇을 느낄까"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by 산 헤드린

1. 사람들 얼굴 앞에서 흔들림


아침 문을 열고 나가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숨결을 흩날리며, 어깨를 스치고, 이동에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밤새 쏟아낸 생각과 걱정의 잔향이 머리를 짓누르고, 머리는 작은 화면 속에 고정합니다.

그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의 떨림을 느낍니다.
한걸음 한걸음 고된 숨결과 늘어진 피부, 노인은 피곤을 머금고 있습니다.

노인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요청하는 부름이 느껴집니다.
저는 잠시 눈을 피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노인 때문에 저의 마음이 움직이는 불편함을 외면하려는 것 입니다.

'누군가 일어나겠지.'

그러나 아무도 저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이내 노인의 고개는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합니다.
노인의 표정에서 말보다 깊은 울림이 마음속에서 파문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도전과 같은 물음을 마주합니다.


2. 타자의 요구

하루에도 우리는 셀 수 없는 갈림길에 섭니다.

메시지의 마지막 점을 찍을지,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버릴지,
상처받은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위조차도 우리의 결정이며, 책임을 동반합니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이 의식되는 순간,
그 얼굴이 발하는 요청을 느끼며,
어느 길로 발을 디딜지 고민하게 됩니다.


3. 얼굴의 질문

아이가 순진 난만한 얼굴로 질문합니다.
“왜 그렇게 약속을 지키려고 해?”

저는 잠시 멈춥니다.
당연하다 믿었던 것이, 언어로 표현되자 흔들립니다.

“믿음이 중요하니까.”
“상대가 기대하고 있으니까.”

그러자 아이의 얼굴은 다시 묻습니다.
“그 기대를 왜 지켜야 해?”

아이의 얼굴은 저의 내면 깊숙한 곳을 건드립니다.
설명되지 않은 신념과 습관이,
한 줄 질문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해가 떠오릅니다.
도덕은 익숙함이고, 윤리는 얼굴이 던지는 낯선 부름에 응답이라는 점 말입니다.
타자의 얼굴은 묻습니다.
“왜 그래야 해?”


4. 마주함의 길


한때 우리의 세상은 단순했습니다.
생명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합니다.
거짓말은 나쁘고, 가족은 돌봐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얼굴은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남들 다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데, 나는 왜 그러면 않되?
옛날이나 '정'이 있었지, 요즘은 누가 남을 챙겨?

전통적 도덕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자의 얼굴은 우리 앞에서 침묵하지 않습니다.
'도와주세요.'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윤리적 관계를 마주합니다.


5. 작은 떨림 속에서 책임


며칠 후, 지하철에 자리가 나서 앉습니다.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저번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합니다.
'내가 발을 다쳤더라면 사람들은 일어나 줄까?'

그 물음은 저를 앉아있게도 만들고, 반대로 양보하게도 만듭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얼굴이 던진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으며,
그 이유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타자의 얼굴에 대한 응답을 레비나스는 윤리라고 설명합니다.

윤리는 설교가 아니며, 규칙의 목록도 아닙니다.
윤리는 타자의 얼굴이 보내는 미세한 떨림을 외면하지 않는 책임입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춘 발끝,
지하철에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의 떨림,
약속을 지킬지 고민하는 짧은 침묵.

얼굴이 묻습니다.
'부탁해.'
윤리는 바로 이 작은 떨림 속에서 태어나며,
그 떨림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책임을 선택합니다.

오늘도 저는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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