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표현주의, 결단주의와 레비나스의 철학
우리는 각자 자기 신념을 따라 살아갑니다.
때때로 전념한다 자신합니다.
이때 무엇을 전념하는 이유는 단지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가 곧 타인에게도 빛이 되리라는 숨겨진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에는 항상 도덕적 판단,
“나는 이것이 옳다”라는 고백을 넘어
“그도 이 빛으로 와야 한다”는 신념을 지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과연 나의 길이 전념할 만 한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곧 나의 전념이 지향하는 빛이
자기중심적인 환영일지,
아니면 타인에게도 빛이 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긴장을 지닙니다.
이 긴장을 우리는 윤리라고 합니다.
여기 윤리를 전통, 표현, 결단 그리고 타자의 얼굴이라고 설명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맥킨타이어가 말하듯
윤리는 전통 속에서 고동칩니다.
윤리란 사회가 자신을 유지해 오면서 형성한 전통과 같습니다.
전통은 '권위를 가짐'과 '무너짐' 그리고 '다시 가짐'의 역사를 반복하며
자신을 만들고 다시 부정하는 서사적 보화입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
전통은 자기 내부의 논리만으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는
한계와 균열에 도달합니다.
여기서 맥킨타이어는
우리의 전통이 새로운 전통의 논리를 만나,
스스로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이를 다르게 봅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전통은 균열을 경험하는 이유는
다른 전통의 논리가 뛰어들기 때문이 아니라,
타자의 얼굴이 우리의 한계를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윤리의 기원은 이성의 위기 속에서가 아니라,
타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 무방비한 순간에 있습니다.
전통이 자신을 넘어서도록 요구받는 이유는
내 앞의 타자가 호소하는 도움의 요청 때문입니다.
전통은 타자 앞에서 이미 흔들리고 있으며,
그 흔들림이야말로 윤리의 시작입니다.
신께 봉헌하기로 한 식량을 들고 있는 자신과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들 중에서, 전통은 식량을 신께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장발장 앞에서 고민합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배고픔을 견디고 있는 타자의 얼굴에서
고민합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이유는 이미 타자가 전통보다 더 중요하다는 증거입니다.
윤리가 감정, 태도, 결단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를 비인식주의라고 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이성이 사실을 분별하지만
의지의 근거는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윤리를 지키는 이유는 따르고자 하는 감정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이성도 감정도 윤리의 근원적 자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윤리는 ‘내 안’의 감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타자의 초월성에서 시작합니다.
윤리는 표현이 아니며,
진리 주장이나 감정의 기원도 아닙니다.
윤리는 타자의 얼굴이 나를 호출하는 사건,
즉 내가 스스로의 주체성을 선택하기 이전에
이미 나에게 떨어진 책임의 무게입니다.
비인식주의가 놓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윤리는 “내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타자가 나에게 무슨 요구를 보내는가”에서 시작됩니다.
윤리는 ‘내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가해진 호소’의 문제입니다.
그 호소는 나의 자율성을 흔드는 타자의 타자성입니다.
결단주의는 말합니다.
윤리의 마지막 근거는 증명도 규범도 아닌,
궁극적으로 내려야 하는 결단이라고 말입니다.
헤어, 베버, 알베르트는 이성의 끝에서 결단이 남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다시 말합니다.
결단은 윤리의 출발점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윤리는 내가 결단하기 ‘이전’에 이미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타자의 얼굴은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나에게 취약함의 요청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윤리는 내가 내리는 선택이 아니라,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응답의 구조입니다.
타자는 나를 선택의 주체로 만들어버리는
초월적 침입이며,
나는 그 앞에서 이미 책임의 자리에 있습니다.
결단은 윤리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부과된 책임에 뒤늦게 따라가는 움직임입니다.
레비나스의 사상에서 윤리는 절대적 타자의 얼굴입니다.
전통은 타자의 호소 앞에서 균열을 경험합니다.
감정의 표현은 그 침묵 속의 부름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결단의 철학은 그 부름이 이미 결단 이전에 내려졌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윤리는 빛 속에서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타자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목소리에
우리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그 떨림입니다.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이 물음은 결국 이렇게 다시 쓰입니다.
윤리는 내 앞에 나타난 타자의 얼굴이 이미 내 존재를 재구성해버린
요청에 응답하고자 하는가?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