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와 레비나스의 철학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고민을 합니다.
그 무수한 고민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지하철 열차 바닥에 쏟아진 물을 보며 닦을지 말지 고민하기도 하고,
회의 중에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고집해야 할지 망설이기도 합니다.
이 작은 고민들은 모두 윤리적 판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질문은 두 가지 철학 사상으로 고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리주의입니다.
공리주의의 핵심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행복”입니다.
다른 하나는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입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통에서 책임이 시작된다”라고 말합니다.
이 두 관점은 마치 서로 다른 렌즈를 끼고 있는 시선과 같습니다.
공리주의는 '행복의 양'에서 사건을 내다보는 시선이고,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는 아주 가까이서 호소하는 타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오늘 저는 이 두 시선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 합니다.
공리주의는 아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입니다.
벤담과 밀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행동의 결과를 셈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기쁨과 고통의 양을 비교하여,
행복을 더 크게 만들어주는 선택이 곧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매우 명료하고 실용적입니다.
왜냐하면 행위의 결과를 두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정책 결정, 의료 판단, 교육,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도 공리주의적 사고가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고통, 특히 소수자의 고통이
“전체의 행복”이라는 계산 속에서 쉽게 간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숫자로 환원해도 되는가?”
“행복이라는 것이 그렇게 정확히 비교 가능한가?”
공리주의는 실용성을 얻는 대신,
한 개인의 고통이 지닌 아픔과 서로움을 때때로 놓치고 맙니다.
레비나스는 전쟁과 폭력, 전체주의의 폐허 위에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레비나스는 윤리의 출발점을
사회, 국가, 제도, 다수가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한 사람의 얼굴’에서 찾습니다.
그가 말하는 얼굴은 생김새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 얼굴은 말없이 나에게 요구합니다.
“나를 돌봐주십시오.”
“나를 다치게 하지 마십시오.”
레비나스는 이 요구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요구 앞에서 셈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타자의 얼굴은 우리의 계산적인 사고를 중지시킵니다.
책임은 선택이 아니라,
타자의 얼굴 앞에 섰다는 사실에서 더욱 무거워집니다.
레비나스는 말합니다.
타자의 고통은 줄여서 계산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는
공리주의의 ‘저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물론 이러한 윤리는 매우 무겁습니다.
이 윤리는 공리주의가 놓치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바로 한 사람의 고통은 결코 “덜어도 되는 숫자”가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현실은 항상 복잡합니다.
병원에서는 여러 생명을 동시에 구해야 하고,
정부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정책을 운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 집단이 차별받을 수도 있습니다.
공리주의는 전체를 봅니다.
레비나스는 한 사람을 봅니다.
둘 다 필요하지만, 둘은 결코 쉬운 조합이 아닙니다.
우리는 두 방식 사이에서 항상 흔들립니다.
이 흔들림이 바로 윤리적 사유의 시작입니다.
“나는 전체를 위해 무엇을 선택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에서 누구의 얼굴을 지나쳤는가?”
저는 우리가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리주의의 시선은 사회를 움직이게 합니다.
레비나스의 시선은 인간을 인간답게 합니다.
우리는 전체의 구조를 보되,
그 구조 속에서 사라지는 한 얼굴을 잊지 않는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정책을 설계하되,
그 정책으로 인해 고통받는 누군가의 얼굴을 함께 떠올려야 합니다.
결국 윤리란
정답을 빠르게 제시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윤리란
잠시 멈춰 서는 능력입니다.
합계를 계산하던 손을 멈추고
한 사람의 떨리는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 멈춤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는 누구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시작하게 됩니다.
공리주의는 묻습니다.
“당신의 선택은 모두에게 어떤 결과를 남기는가?”
레비나스는 묻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이 놓친 얼굴은 누구인가?”
이 두 질문을 동시에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적인 결정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