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으로 살면서 회피형인지도 모르고 콧대 높게 산 지 꽤나 되었다.
나는 애착유형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대체적으로 주변에 큰 관심이 없고, 늘 긍정적이고 강하게 목표를 이뤄내왔고, 내 스스로 독립적이고 한번도 약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보니 애착유형이나 MBTI 에도 정말 관심이 없었다.
물론 나의 MBTI 가 뭔지만 조금 기억하는 정도이고 각 글자가 뭐인지, 내가 무슨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해본 적도 없다. 나는 심지어 남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거의 안 본다. 보면 부러울 수도 있고, 실제로 궁금하지 않아서..
남자친구도 마음에 한 번 안들면 쉽게 관계를 놓아버리고, 친구가 두세번 정도 잘 못 하면 참다가 그냥 말없이 조용히 손절 하고 그래왔다. 다행히 내가 활발하고 같이 놀면 재밌는 타입이라 그런지 항상 이런저런 모임에 초대받는 편이라 누군가와 굳이 갈등이 생기면 그걸 풀려고 노력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어짜피 딴 친구들이랑 놀면 되니까.. 그리고 만나던 남자들은 거의 다 다시 연락이 오길래 내가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역시 전형적인 회피형의 특징이라고..
이번에 정말 좋아했던 사람과의 연애에서 정말 나보다 심한 회피형을 만났다.
사실 회피형을 만나본 건 처음이었다.
갈등을 말 안하고 너무 잘 지내다가 한 번 크게 싸운 뒤 갑자기 잠수 - 끊어내는 모습이 나에겐 충격적이었고 많이 아팠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걸 이해하려고 이것저것 유튜브와 인터넷 글들을 보는데, "정말 이런것까지 회피형의 특징이라고?" 할 정도로 소름돋게 그 사람은 찐 회피형이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예를 들면, 혼자 빨리 걷는다는 것, 스트레스 받으면 못 견디고 잠을 엄청 자는 것.
이 사람은 심지어 일에서도 회피해서 일 관련 계약도 자주 펑크내는 찐 회피형이었지만..
신기해서 찾아보다가 이별의 슬픔이고 자시고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더 찾아보게 되었다.
근데 보다가 보니까 내 전 연애에서 내가 하던 행동들이랑도 좀 비슷하잖아?
어쩌면 내가 회피형이라서 그냥 전남친이 해도 내겐 전혀 문제시 되지 않던 것들인데, 이게 알고보니 안정형이나 불안형이 보기엔 이상해 보이는 행동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3 주 동안 열심히 보다보니, 인지부조화가 오는건지 아니면 진짜 내가 회피형인건지가 헷갈리는 수준에 이르렀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게 되었다. 그 전에 인터넷의 간이검사를 해보니 거부회피형이라네..?
두시간동안 이어진 상담을 통해서, 상담가분은 내가 상대와의 갈등에서는 큰 회피형는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 자신의 감정을 심하게 회피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밝은 모습만 보이기 위해서 속상하고 힘들고 슬픈일을 그냥 계속 웃으면서 얘기하고, 뭔가 있던 일에 대해 물을 때 내 감정에 대해 질문이 들어오면 대답을 바로 안하고 갑자기 말을 돌린다던지, 너무 밝고 씩씩하게만 들려서 감정을 제대로 듣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실제로 나는 거의 불안도가 아주 극한 상황 (시험 직전, 이별 직전, 비행기 놓친 것 등) 이 아니면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냥 힘든 일 있으면 아 어떻게 되겠지 하고 그냥 그 감정을 묻고 즐거운 생각만 하려고 노력을 한다 - 전형적인 회피의 모습
그때 있던 일, 상처받은 일을 자꾸 곱씹고 얘기꺼내는 사람 자체도 불편하다.
문자나 이메일도 대답하기 싫으면 회피하다가 한참 있다가 대답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잘 읽지도 않는다.
일하는 이메일만 열심히 칼답함.
계속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기분 상하면 굳이 그 사람 안 본다.
이 전 남자친구들과도 대화보다는 생각해보다가 내 마음에 안들면 그냥 이별했다.
솔직히 한두개 연애 외에는 이별 후 많이 힘들어본 적도 없다.
누가 너무 대뜸 갑자기 가까워지려고 하면 약간 불편함을 느낀다. 그나마 외향형이라 인간관계는 굉장히 넓고 좋은 편이지만 속으로는 마음을 크게 열지 않는다.
처음으로 당해보니 너무 최악인 것 같아 꼭 고쳐야겠단 생각을 했다. 역시 거울치료가 최고이다.
이 상담 후 어떻게 고칠 지 얘기를 했는데, 매일 무슨 일이 있으면 감정의 이름을 붙여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루에 있던 일 중 하나를 골라서 그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뭐였는지, 그건 어떻게 부를 수 있는 지, 계속 보고 명칭을 주는 연습을 해보라고 해서 일주일 정도 훈련하다보니 처음엔 진짜 한 단어 "행복인가..?" 하면서 겨우 이름 붙이던 게 조금 더 긴 문장 "아 내가 그 때 느낀건 속상함이었는데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구나" 등으로 이것저것 쓸 수있게 되었다.
상담과 감정표현훈련에 덧붙여 요가를 주 3 회 꾸준히 나가다보니 마음의 중심을 잡고 감정의 주체를 나 자신으로 가져오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는 노력을 하면서 보니 어쩌면 이게 우리 이별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의 싸움으로 그 애가 무너져내리면서 계속 곱씹고 우울해하고 말도 안하고 소통이 안되고 이런게 물론 너무 잘못된 행동이지만 나는 속으로 "왜 그냥 털고 일어나고 그냥 잊으면 안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로해주기보단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대하고 계속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만 했다.
내 잘못에 대한 부분은 사과도 제대로 안하고 내 마음을 한번도 얘기 안 하고 이별 순간에도 ^^알겠어 행복한것만 기억하고 잘지내 하고 돌아서와버렸다. 단 한번도 붙잡지 않았고.
겉으로는 아주 좋게 응원하는 이별을 했지만 둘 다 속은 문드러졌다는 걸 이미 얘기를 통해 알았지만 붙잡고 싶고 더 얘기해보고 싶은 내마음을 외면하고 돌아왔다.
나는 나름대로 슬픈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스스로 슬픔에 잠식되기 싫어서 한 행동이지만 그 애는 내가 전혀 미안함, 슬픔도 없이 그냥 감정을 못 느끼나 싶었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 당시엔 회피기질이 너무 크게 나타났던 나는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고 불편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회피형끼리 둘이 생쇼를 한 듯..
암튼 그 애의 잘못은 본인이 알아서 책임질 일이고, 나는 나대로 내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내 성격 고치기에 들어가는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별의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내면 성장에 집중하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내 감정에 직면하기 위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담백하게 언젠가는 보내보려고 한다.
그 애도 나도 받아들이고 편하게 말할 준비가 되었을 시점에 우리 둘 다 감정이 어느정도 괜찮아지고 회복이 되었을 때. - 웃긴건 필자가 회피형이라 이런 순간이 언제쯤일지는 잘 알 수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