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말을 하기 전, ”내가 하려는 말이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을까? “ 를 먼저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습관이 생긴 탓에 말이 느려져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있지만, 덕분에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뱉곤 후회하는 일은 적어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소심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의 무례한 말에 상처를 입어도, 똑같은 말로 받아치거나 화를 내본 경험이 없다. 그런 성격 탓에 지나고 나서, “왜 아무 말도 못 했지? 내가 봐도 나 진짜 답답하다. “ 와 같은 말로 나를 질책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고등학생 때 유독 나에게 집착하는 친구가 있었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친구 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 가 존재하곤 했는데, 그 친구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 쉬는 시간이 되면 같이 화장실을 가는 게, 그때의 우정이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 옆에 짝꿍과 함께 화장실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서서 나를 째려보고 있는 그 친구가 보였다. 내가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그 친구는 당황스럽게도 내 등짝을 ”착 “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리쳤다. 나는 너무 놀라 아프다는 생각을 할 세도 없이 얼어버렸다. 옆에서 다른 친구들은 나에게 괜찮냐고 묻기도, 또 왜 때리냐고 그 친구를 수근 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때도 그 아이가 속상해서 그랬겠구나. 이 친구도 후회하고 있겠지. 싶은 생각에 애처 웃으며, “다음 수업 미술이야! 얼른 가자” 하며 웃으며 상황을 넘겼다. 나는 미술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고, 그 친구는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나 연필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라고 물어봤다. 그런데 연필 대신 전혀 얘상치 못한 말이 내 가슴에 날아와 마치 연필이 박힌 것처럼 꽂혔다. “나 따돌리고 쟤랑 노니까 좋아?” 순간 정말 가슴에 연필이 박힌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난 그의 무례함에 늘 침묵으로 배려했던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그지없었다. 그 친구는 나랑 친한 친구를 이간질해 따돌림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험이 끝나 학교에서 영화를 틀어주는 날에는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 친한 친구들과 모여 영화를 보곤 했는데, 나와 친한 그 친구 주변에만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의자를 가져가 그 친구 옆에서 영화를 보면서 빈자리를 채웠다. 하나 그 정도도 못맞땅했던 걸까? 그 친구는 나에게 빨리 내 옆으로 오라며 나를 닦달했다. 그의 따돌림에 지쳐 한탄하던 친구는 결굴 전학을 선택했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서러움에 나의 멘틀은 온전하지 못했다. 그 친구가 전학을 간 후에도 돌림 따돌림은 계속되었고, 선생님도 같은 반 친구들도 방관했다. 그때 내가 무서웠던 것은 그 타격이 내가 될까 봐 가 아닌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될까 두려워졌다. 나는 도망치듯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퇴를 했다. 자퇴 당일 그 아이에게 이제까지 못 했전 욕까지 다 퍼부어야지 자퇴서에 도장 찍는 날만 계속 생각하며, 들 끊는 화를 간신히 참고 있었지만, 막상 그날이 오자 난 그때도 역시 침묵했다. 그 후로도 난 그 친구를 쉽게 용서하지 못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고 괴로운 마음과, 나 역시 단단하지 못해 도망쳤다는 사실, 또 지켜주지 못한 친구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퇴 후에도 마음이 괴로운 건 달라진 바 없었다.
그때 내가 침묵이 아닌 그와 같은 말로 대응하며 화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 일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친구도 지금쯤 후회하고 있겠지. 하는 나만의 해석으로 그를 용서할 수 있어 다행이다.
무례한 말에 대응하지 않고, 침묵하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언젠가 용서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 용서할 수 있는 침묵에는 늘 쉴 자리가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