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현 Sep 25. 2023

역대급 다채로움 | 튀르키예 (4)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거야

    여행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지만, 유독 여행 중에서 싫어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는 것이다. 여행 전에 그 나라의 정서, 인사표현, 역사 등을 간단히 공부하는 것은 여행을 하는 데에 있어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부는 딱 거기까지. 해외여행을 떠나면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이나 주변 풍경을 보고, 유명한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게 좋다. 때론 외국인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 sns를 공유하기도 하며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한다.

    외국에 나갔으니까 한국에선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는 것. 상상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가? 가뜩이나 한국에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든데 왜 외국까지 나가서 역사 공부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패키지여행이라 어쩔 수 없이 박물관과 유적지에 자주 갔다. 정말 다행인 사실은 박물관을 자주 간 시점은 이미 윤서누나, 재환이와 친해진 이후라는 것이다.

    우린 가이드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 듣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에겐 그것들이 그저 돌로 보이고, 금속으로 보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라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다행히 나머지 둘도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진 않아 보였다. 마냥 떠들었다. 떠드는 동안 우린 그 어느 순간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고등학생 때 수업을 몰래 빠지고 친구들과 학교 뒤에 있는 편의점에 가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탈이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고 전공 교수님이 “낭만을 즐겨라, 때론 일탈을 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될 때가 있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감동받은 나는 실제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혼자 바닷가에 놀러 간 적도 있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다음 수업 때 교수님께 잔소리를 듣긴 하였지만,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고 당시 나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었다.

    일탈이라는 단어는 흔히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곤 하지만, 일탈은 나에게 큰 행복을 자주 가져다주었고 어떨 때는 오히려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우리가 가이드의 설명을 뒤로하고 떠들고 있을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히려 당시에 했던 일탈 덕분에 우리가 갔던 유적지나 박물관이 더 기억에 잘 남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라도 나에게 남는 게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들은 건 없었지만 얻은 건 충분히 많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박물관도 안 가고 유적지도 안 가면, 그럼 여행의 의미는 뭐야?”

    물론 박물관과 유적지에 가면 그 나라의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런 이야기들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시간에 외국인 친구를 한 명 더 사귀어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대화들을 나누는 게 더 좋다. 그러한 대화를 통에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 수 있으며 내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고칠 수 있다. 이처럼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이 더 좋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거다. 특히 여행길에선 더욱.

매거진의 이전글 역대급 다채로움 | 튀르키예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