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많은 집을 보면 그중엔 아들을 대신하는 딸이 있기 마련이다. 4녀 중 3녀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도 안 하고, 무던한 성격에 용감한 편이라 아들 같은 듬직한 딸이었다.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옛말과는 달리 예쁜 외모도 아닌 데다 유난히 두툼한 손과 발을 보며 어른들은 복 손이라 좋다 하셨지만 나에겐 점점 콤플렉스가 되어갔다. 나의 두툼하고 볼이 넓은 발은 운동화를 사더라도 항상 한치수 큰 사이즈의 신발을 신어야 편했고, 구두를 신으면 영 맵시가 나지 않았다. 짧고 두터운 손은 커갈수록 더욱 투박하게 보였고, 액세서리를 좋아하던 내가 언젠가부터 반지도 잘 착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발은 평소에 드러내고 다니지 않아 감출 수 있었지만, 손은 내보일 수밖에 없어 사춘기 시절 예민한 마음에 힘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 상황이 오면 부끄럽지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는데, 내 손을 잡은 사람들은 으레 몸은 말랐는데 손이 왜 이렇게 두꺼우냐며 놀라는 말 한마디씩을 던지곤 하였다. 그래서 한때 친구들한테는 나는 원래 악수를 싫어한다고 하며 미리 손을 잡는 행위를 거절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부끄럽기만 했던 내 손을 처음으로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던 순간이 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3 때 수능시험이 끝나고 실기시험만을 앞둔 몇 달 간이었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오로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었고, 실기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선 내 손의 안위가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다. 어린 생각에 만약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오른손만은 다치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입시의 순간은 내게 절박하였다. 다행히도 실기시험을 치르는 동안 내 손은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고, 바라던 대학에 24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는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공예학부에 입학한 나는 금속, 도자, 섬유공예를 모두 배워 과제물이 많았지만 하나하나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그중에 특히 인내심과 섬세함이 요구되면서도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금속공예가 나의 성향과 잘 맞는다고 생각되었고, 3학년부터는 금속공예를 전공으로 선택하여 금속공예가의 길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나의 손은 더욱 거칠어져 갔고, 그나마 손가락을 길게 보일 수 있어 길렀던 손톱은 작업을 하는데 방해가 되어 자르면서 더 뭉툭해 보였다. 게다가 작업을 하고 난 후의 내 손은 검은 때가 묻어있어 친구들이 '을지로 아저씨 손' 같다고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을지로에 재료를 사러 가거나 작품 가공을 하러 갈 때 보이는 아저씨들의 손이 투박하면서 항상 검은 때가 끼어 있었는데 내 손이 영락없는 을지로 아저씨 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 말이 점점 기분 좋게 들렸고, 어느새 나는 작업을 잘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동기들은 작업을 하다가 문제가 있을 때 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고, 나는 쉽게 그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도 하였다. 동기들은 점점 나의 손이 작업을 하기에 타고난 손이라고 부러워하였고, 고된 작업에도 큰 상처 없이 나를 위해 움직여주는 나의 손이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배우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머리였지만, 그 생각대로 움직이며 창조물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손이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 손은 더 숙달된 솜씨로 멋진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다.
2년 차 디자이너의 길을 가고 있는 지금.. 망치질을 하고 땜을 하는 고된 창조의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케치를 하고, 모니터에 그 상을 만들어가며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디자인을 다듬는다. 작업을 많이 해서 컴퓨터 앞에서는 둔할 것 같은 손이지만 익숙하게 키보드의 단축키를 두드리며 재빠르게 움직인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거칠고 때가 낀 을지로 아저씨 손은 아니지만 그때의 열정은 아직도 내 손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앞으로 이 손이 어떤 임무를 맡아 움직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것처럼 나에게 좋은 성취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일이 어렵고 힘들수록 그것을 이루어낸다면 그 성취감도 크듯이 나의 손, 나의 열정은 예전보다 더 큰 일을 기대하고 있다.
에필로그
13년 전 디자이너로서 성장하고픈 열정을 꾹꾹 눌러 담아 썼던 글을 41살인 지금 브런치 작가 등단을 위해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12년째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느라 손마디는 더 굵어졌고 여전히 거칠다. 작년부터 20대에 이루지 못했던 금속공예가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풀무질 중에 이 글을 보게 돼서 열정에 불이 지펴졌다. 작품 활동도 글쓰기도 모두 손이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또 한 번 내손에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