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걸려도 이겨낼 걸 아니까
하루가 지났고, 나는 이제 10월 모의고사 오답들을 정면 승부할 기운을 되찾았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스트레스를 마주했을 때 회복하는 기간이 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어제, 해반천을 따라 걸으면서 Sabai의 Million Days를 들으면서 심신을 안정시키며 달구경을 했다. 계속 걸으면서 머릿속의 생각들을 비우려고 노력했고, 찬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추위를 타지 않는 나에게는 이 날씨가 너무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내 상상 속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난 뒤(노래를 들으면서 좋은 곳을 걸어 다니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꿀잠을 자고 나서 모의 고사지는 이제 그저 내가 풀었던 숱한 문제지 중 하나가 되었다. 문제지는 많이 틀려도 연습이니까 정신적 타격이 덜하다.
그리고 대학 발표도 정면 승부할 준비가 되었다. 붙을 가능성이 낮아도 문예창작과에 붙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고 국제통상학과에 붙어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문득 내가 이전까지 이 학과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맞아, 그때는 내가 공정무역에 미쳐있었다. 무역 자체보다는 공정무역에 미쳐있었다. 발표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했고, 거의 활동가가 되기 전까지 갔었다. 너무 멋진 무역이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어서 여러 벽에 부딪히고 문제점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난 후, 나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나름 연구를 하면서 보고서를 쓰고 수행평가에 여러 개를 냈었다. 내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정무역에 대한 카드 뉴스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공정무역 마크를 따라 그리는 게 취미가 되었다. 그때, 엄마는 공정 무역 전문가가 되겠다는 나에게 돈이 많고 그럴 여건이 되면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었다.
작가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기회를 계속 찾고, 공모전을 통해서 내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엄마는 이제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자발적으로 도와주시기 시작했다. 지역 신문의 시보에 글을 올리는 게 있으면 신문의 부분을 잘라서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언제든 글쓰기와 관련된 정보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깨달았다. 내 정면승부의 비결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동생은 댄서가 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런 동생에게 현수막에 걸려있는 행사들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중학생이 되면 동아리를 만들고, 오디션이 있으면 무조건 기회를 잡으라고 말했다. 부모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녀도, 기회를 잡아 보여주는 것으로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