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에서 얻은 것

내가 필요로 했던 것

by 칼미아

나는 우울증을 앓았을 때 학교 보건실을 자주 갔다. 처음에는 단지 상처를 가릴 밴드를 구하러 갔었는데, 보건 선생님이 내가 자해를 한다는 걸 눈치채셨다. 그 뒤로 학교 상담 선생님이 학교에 안 계실 때는 보건실을 갔다. 학교 상담 선생님은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잔병으로 고생하셨다. 그래서 4교시 이후에는 뵐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자해를 하고 나면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남는 건 상처밖에 없다는 현실. 보건 선생님은 자신의 학창 시절 얘기를 해주시면서 여느 어른처럼 위로를 해주셨다. 솔직히 나는 울다가 과호흡이 와서 숨이 쉬기 힘들 때 주로 조퇴를 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고, 학교에서 뛰쳐나오면 내가 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 자신과 그리고 부모님과 선생님들과 조퇴는 되도록 안 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래서 병원을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험이 있는 날들은 좀 위험하다. 10월 모고는 최저를 맞추기에는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영어가, 항상 1이 나오던 영어가 단 1문제, 3점 차이로 2등급이 되었다. 그 사실 하나가 너무 신경에 거슬렸다. 밖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말하고 다녔지만 너무 아까웠다. 그냥 어려워서 다 틀리는 것보다 더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나는 항상 1,2개 틀리고 우는 친구들을 보면 배가 불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니까 은근히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짜증이었다. 이제 그 친구들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오랜만에 보건실에 갔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가벼운 상처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조퇴 욕구였다. 주변은 온통 모고 와 수능 얘기로 가득했고, 더 이상 담임선생님께 기대고 싶지도 않았다. 부모님도 의지가 되지 않는데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친구에게는 더더욱.



보건실 안에 들어가서 소독약을 뿌리면 그 고통으로 잠시 동안 부정적인 생각을 잊을 수 있겠거니 싶어서 찾아갔는데 나는 밴드뿐만 아니라 마음의 밴드까지 얻은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경청해줄 어른이 필요한 거였다. 지금 시점에서 멘탈관리랑 페이스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시던 선생님 앞에서 눈물이 터졌다. 선생님께 모의고사 오답을 하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는 게 너무 싫고 짜증 난다고 털어놨다. 펼치면 틀린 것들이 비수가 되어서 내 심장에 꽂히는 것 같다. 내가 몇 등급이 나왔는지와는 상관없이 너무 거슬리고 짜증 난다. 그러면 안 되는데, 보완할 점을 찾고 분석해야 하는데 감정적인 통제가 되지 않았다. 왜 10월이 9월 모고 보다 더 어려운 것만 같지...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날려버렸다. 화가 나고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가득했는데, 몸이 굳은 것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 끝났으면 싶었다. 1달 남짓 남았는데 너무 길고도 짧게 남은 것 같은 아이러니함도, 혼자서 만들어낸 압박감도, 잠 못 이루는 하루들, 악몽들도 다 끝났으면 싶었다. 마치,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릴 물풍선처럼 신경은 장미가시 못지않게 뾰족해져 있었다.



면접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있었다면 더 심했을 것이다. 충분히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멘탈은 이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걸까. 아물면 다시 다치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건 내 팔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도 몸을 따라갔다. 보건실에 있는 그 어떤 약도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오직, 선생님의 정적을 깨는 말들만이 도움이 됐을 뿐이었다. 나만 예민한 거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누가 보면 뭐가 힘드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도 나 자신이 되볼 수 없으니까, 그게 바로 자신의 상처의 크기가 가장 큰 이유고, 가장 아픈 이유다. 내가 사는 삶은 타인의 것이 아니고 내 것이고, 내가 느끼는 것들은 나만 느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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