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존재하는 이유가 있겠지
최저를 맞추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성적이지만 10월 모고에서 영어가 2등급이 떴다. 원래 1등급이 떴었는데.... 그 사실은 옥에 티처럼 내 신경을 긁었다. 2합 10만 맞추면 되지만 나는 왠지 2합 5를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9월 모고를 칠 때는 불안감에 자해를 했었는데 9월 모고에서 만족할만한 등급이 나오고 나서 그 이후로 나는 안정된 마음으로 수능 준비를 했고, 긴장감도 덜어졌다. 10월 모고를 칠 때 자해 충동은 참아낼 만했다. 나는 수학과 사탐은 버리고 최저를 맞추기 위해 국어와 영어, 한국사를 준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챙기지 않기로 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은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되뇌며 최선을 다했다.
영어는 2였고, 나머지는 저번과 같았다. 국어는 4였고, 한국사는 3이었다. 수능 때 이대로만 나와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근데... 얼마 안 남았긴 한데.... 언제 끝나지? 물론 수능 끝난다고 가슴 졸이고 잠 못 자고 우는 일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다른 일들이 다가오겠지. 근데 지금 이 수능은 언제 끝나지? 졸업도 빨리 하고 싶다. 엄마는 더 이상 내 성적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수능은, 다가오는 것도 싫은데 이어지는 것도 싫은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갖게 한다. 또 잠이 쏟아진다. 우울해지는 건가.. 지금은 안되는데, 그리고 또 왜? 선생님들은 사탐에 총력을 다 할 시기라고 했지만 난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안다. 담임 선생님은 수능 준비 안하는 친구들에게는 주의를 주시고, 준비하는 사람인데도 방해가 되는 행동하는 사람들은 정말....별로라는 맥락의 말씀을 하시고 교실을 나가신다.
예전에 힘들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천국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 수 있다. 그때는 내가 이 시기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나는 아직 살아있고, 공부도 하고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 만족을 할 수 없다는 게 내 신경을 긁지만. 조금만 잘되면 기대를 하게 되는 게 싫다. 기대를 하고 그게 꺾이면 다시 복구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기대가 없이는, 불안 없이는 꿈도 없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기대가 없으면 나아가지 못하지 않을까. 기대는 무서운 단어다. 조절을 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리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잘 사용되면 행복으로 이어지지만 아니라면 애초에 없었으면 싶은 것이다. 이것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겠지. 언젠가 그 이유를 찾게 된다면 미소 지을 날이 다시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