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니지만 그런 기분이 아니야
주식이 오르던 걸 보던 난, 엄마가 하는 걸 봤던 대로 차트에서 최고치를 찍었을 때 판매 예약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혼났다.
"내가 말하기 전까지 가만히 놔두라고 했잖아!! 왜 도대체 말을 안 들어, 왜?"
그 뒤에 아빠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몽도리한테 팔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말 안 해서 다행이네."
"앞으로 너네 아빠한테나 물어봐, 너 알아서 해!!"
나는 보고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그리고 카톡으로 물어봤어도 엄마는 그 시간대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억울했던 나는 엄마가 한 그대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 엄마가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나도 물어봤다고!! 답을 안 한 건 엄마잖아. 나한테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나도 모르게 예민함을 쏟아내자마자 후회했다.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울어버렸다. 갑자기 기분이 파도를 타고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약을 챙겨 먹는 것도 깜빡했고, 방금 엄마가 내게 소리 지른 게 화풀이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요즘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셨다. 가족끼리 잡은 약속도 취소하고 돈을 아껴야 한다며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가고 싶은 데를 전부 사고 가기엔 우리가 가난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자퇴해서 날아간 돈도 다시 벌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 잊고 있었다. 내 우울의 원인 중 하나, 죄책감.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너무 죄송했다. 안절부절못하며 내가 자책을 하며 우울에 빠지기 전에 얼른 기분을 전환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말투와 언성은 힘듦에 의한 화풀이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안다, 엄마가 하는 폭언은 전부 있는 그대로가 아니며 나를 위한 말이라고. 이면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값이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나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 아닌 엄마의 성격에 의해 내가 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는 양상같이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깨를 내어줘야 하는 절대 엄마가 말한 대로 내게 등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도 밉고 그 말 한마디에 감정이 양극으로 가 눈물이 나고 우울해지는 것이 부끄럽다. 이래서 사회에 나가서 쓴소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21년째 엄마의 말들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집에 나가라는 말과 내게 등신이라고 하는 말이 전부 진심처럼 느껴져서 엄마의 진실된 마음을 구분할 줄 모르던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은 엄마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니 내가 이해하고 너무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셨다. 오빠는 군대에 가서 엄마의 폭언 덕분에 웬만한 군대에서의 폭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모르겠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 그렇게 아프게 다가오고, 오늘 동생이 좀 양심 있게 살라고 장난스럽게 한 말이 가시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웃어넘기며 알았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소리를 지르고 매일 한숨을 쉬며 푸념하는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돈이 문제고, 현실이 문제고, 내가 문제였다. 엄마를 이해하기에 동생의 말이 맞는 거 같아서, 내가 우울증에 걸려서 돈이 많이 나간 것만 같고, 한동안의 폭식과 충동 소비로 인해 헤프게 보였던 것과 잘 되지 않는 동생과의 과외, 다음 달이면 나오는 대학 합격 발표, 통과되지 않은 도서 승인 하나, 모든 게 거슬렸다. 예민해지고 있었고, 친구들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가며 연락하나 오는 이가 없었다. 나는 애써 행복하다고 합리화했지만 나아지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마음에 생긴 구멍이 만든 간극을 메우지는 못했다. 과대 자기와 내 안의 결핍이 하나하나 건드려지는 날이었다.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눈물이 쏟아지고 감정이 폭발해서 내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게 멍해졌다. 이젠 이런 느낌이 익숙하면서도 두려웠다. 더 아픈 사실은 그들의 말이 전부 사실같이 느껴지고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현실에 부딪히며 가족이 했던 아픈 말들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그저 이상주의자가 되며 충동적인 모험가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내 것이고 나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기에 나 자신을 그 와중에도 믿어줘야 한다. 가까워서 더 아픈, 가까워서 더 진심처럼 느껴지는 우려이자, 사랑이자, 잔소리인 외면할 수 없는 말들, 거기에 날카로운 말투와 장난스러운 말투 한 스푼, 힘듦과 한숨 두 스푼이 섞이면 원래의 맛을 잃어버린 음식이 되어 버린다. 소화가 되지 않는 거북한 음식 말이다. 그냥 알겠다고 할 기력이 사라져 버린다. 그냥 넘어가고 그러려니 하는 건 아직 연습이 덜 된 모양이다. 지치지만 내가 만든 여유의 공간에 잠시 들어갔다가 어떤 것들은 해결되지 못해도 놔두고, 답이 없는 시험지도 꽂아두고, 비어있는 공간도 그냥 둬야겠다. 세상 모든 게 답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니. 엄마의 예민함과 나의 예민함이 부딪혀 충돌이 일어난 그저 여러 날들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나도 앞으로 살아갈 때 적당한 슬픔과 고통, 외로움, 씁쓸함, 서운함까지 어느 정도는 품고 살아가기로 했다. 그것들도 내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도 감정적으로 힘들게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반대로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과는 반대되는 것들을 먼저 던져준다.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며 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더 빛난다는 걸 깨달은 지금,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결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어저께는 더 이상 숨지 않고 타인이 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오늘은 아무도 모르게 마음정리를 한 채로 행복해졌다. 어제의 해는 졌고 오늘의 해가 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현재를 놓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