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에서 용기를 내보다
나는 그동안 불편했던 관계는 다 잘라내 버리거나 피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홍보함과 함께 옛 인연들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중에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리고 정말 내 연락을 받지 않은 사람, 막상 연락해 보니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등 전부 결국에는 미리 연락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피했던 건 아마 내 안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책을 쓰면서 내 안에 있는 걸 다 쏟아냈으니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었다. 초, 중, 고 때의 선생님과 고등학교 선생님, 대학 교수님까지 전부 조금씩 손을 뻗을 수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응원해 주셨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거나 특정한 이유로 피해버린 친구들도 나를 응원해 주었다. 더군다나 다음 달에 만날 사람들도 한가득 생겼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니다, 그때는 그때의 내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용기를 낸 것은 나에게 있어서 변화의 시작이었다. 자존감을 올릴 만한 또 하나의 이유였고, 이제 다시 소설을 창작할 용기도 얻게 된 것 같다.
예전부터 주변에선 나에게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완전하게 연을 끊어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성격상 내 마음에서 삼진아웃을 당한 사람은 연락이 끊겼다. 그 점을 나는 좋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와 가까웠지만 서로 멀어져 버린, 혹은 내가 놓쳐버린 인연하나가 있다. 대학 1학년 때 친했던, 고등학생 때 비슷한 일을 겪었던 언니는 재수를 해서 더 먼 곳으로 떠나 버렸다. 만나러 가기엔 너무 멀었고, 나는 일종의 배신감도 들었다. 하지만 자퇴를 한 지금, 나는 그녀를 이해한다. 언니는 당시 힘들 때 카톡에 힘들다고만 말하고 구체적으로 왜 힘든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그 심정을 이해한다. 그 당시에는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미리 준비하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고, 마지막으로는 성공한 그녀가 부러웠다. 나도 하면 됐지만 에너지가 소진되어, 그리고 노력이 부족하여 그 언니만큼은 못 했다.
당시에 재수는 꿈도 못 꾸고 편입을 하려 했었다. 우리는 꽤 돈독하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가서 다른 학교에 가거나 자퇴를 한 비슷한 경험까지 합쳐지자 동질감이 생겨 많이 의지했었다. 독서실도 같이 다녔고, 어렸을 때 얘기나 고등학생 때의 힘들었던 경험까지 맥주를 같이 마시며 얘기했었다. 하지만 점점 서로 바빠지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다른 학교로 가버린 그 언니는 더 이상 연락이 안 된다. 나도 거리를 뒀다. 우리는 서로 힘들 때만 찾는 관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힘들면 털어놓거나 밥을 같이 먹으면서 어느 정도는 각자의 힘듦을 나눠 가지는 돈독하고도 무거워지는 사이에 서로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서적으로 그 언니를 밀어냈고, 항상 언니가 자기가 힘들 때만 나한테 연락하고 다른 때에는 내 연락을 받지 않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무안하게 끝나버릴 우정이란 사실을.
응원해 줄 수 없었고, 너무 바빴고, 놀러 오라고 해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간 그 언니를 나는 잊는 게 편했다. 쓸쓸함도 느껴지고 불안감도 생겨서 열등감으로 빚어졌다. 그리고 모든 게 다 끝나고 기분이 나아진 언니가 다시 연락을 했을 때 나는 억지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마냥 미소를 지을 순 없었다. 그래도 연락을 이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때는 내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젠 그냥 한 때 친했던 언니로 기억된다. 그래도 먼저 연락해 본 걸 후회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이니 우리 서로 떨쳐낸 거겠지. 대학에 와서 깨달았다. 우정은 영원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로 남을 사람은 서로 멀리 있어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난 나와 생일이 비슷한 친구에게 내 책을 선물하고, 우리의 생일 날짜 중간쯤에 그녀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예전에 우리가 놀았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연을 이어가고 싶은 친구는 이 친구였다.
내 책에도 나오는 친구, 힘든 시기에 잠시나마 함께 있었던 친구,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내가 내려가도 되냐고 물으면 당연히 좋다는 친구. 서로 관심사가 비슷하고 항상 주제는 비슷해도 할 말이 있는 친구다. 이렇게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용기를 내며 성장하고 있는 나 자신이 좋은 것 같다. 서툴러도 쉽게 다가가지 못해도 나만의 방식으로 진심을 다하면 너무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멀면 내가 갈 수밖에,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이면 찐친이다. 내가 찾아갈 것이다.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유지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관계도 결국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