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끓기 1도 전,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 탄핵 집회를 하는 중, 많은 사람들이 중간중간에 들어와 참여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구호를 외쳤다. 안면식도 없는 완전한 남이었는데 이런 단합력을 보이는 게 시민사회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집단지성의 힘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모두가 간절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구호를 큰 소리로 외치면서 이젠 제발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모였다가 빠르게 해산된 집회에서의 촛불은 거센 가을바람에 의해 꺼져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온기로 다시 불붙었다. 서로 촛불을 다시 켜주며 앞으로 나아가며 집회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경찰들까지 다 한 마음 한 뜻 같았다. 촛불집회가 끝난 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더 해야 시민 사회가 원하는 대로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
혹여나 또 나가야 할 상황을 대비하여 시위 때 가지고 나갔던 물품들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지만 뉴스를 보면 꽤나 답답하다. 하지만 그날은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다. 다음날 나는 갓 취업을 한 바다언니를 만나러 갔다. 언니는 취직의 기쁨보다는 피곤에 절어있었다. 우연히 길냥이를 구조했는데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냥이는 잘 길들여지지 않아서 밤만 되면 나가고 싶어 하며 우는 고양이로 인해 직업교육을 받는데 지장이 생겼고, 어떤 방법을 써도 바뀌지 않아서 다시 고민에 잠기게 된 바다언니였다. 나도 한때는 혼자 살게 되면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세세하게 알게 되자, 마음이 바뀔 것만 같았다.
물론 바다언니에게는 언니가 데려왔으니 몇 달만 더 길들이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팩트를 순화시켜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언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구조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다가올 많은 일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힘들 줄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취직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집에 새것 그대로 놔둔 컴퓨터 커버를 2개 가져가서 주었고, 언니는 나에게 네 잎 클로버로 만든 레진아트 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항상 네 잎클로버를 찾고 싶어 했었다. 어릴 때는 실물을 원했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형상이 아닌 행운 그 자체를 원했다. 어쩌면 이기적으로 요행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다언니랑 얘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것들을 했고,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해나가고 싶은지 브리핑하듯이 말해 버렸다. 언니는 지쳐 보여서 나는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 싶어 언니가 말을 할 주제를 많이 던졌고, 언니는 고양이 얘기가 80%였다.
그렇게 피곤했는데도 몇 달 만에 첫 약속이 나와의 선약인 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언니가 내 말에 지친 게 아니라 고양이한테 시달려서 그런 것이라는 걸 이해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취직을 하고 고양이를 키우게 됐고, 거주지까지 옮기게 된 언니랑 더 자주 만나지 못할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꼭 유지하고 싶은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노력이 너무 힘들어서 몇 명을 놓쳤다. 연락이 끊겼고, 가끔 외로웠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러지 않기로 다짐하고 대면하기로 했는데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찾아가기가 힘들다. 바다언니의 새 거주지는 는 버스를 타고 가면 꽤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있을 범위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또 씁쓸함이 느껴졌다. 성인이 되고 나서, 오래가는 인연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 때는 이에 대해 깊게 생각했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소수의 사람들과 오래가는 사람인데,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는 친화력을 발휘하는 것이 쉬운 사람들에게 유리한 사회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인맥을 유지하기로 다짐했고, 내가 정말로 남기고 싶은 사람들을 나 스스로 판단해서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바다언니도 그중 한 명이다. 내 친오빠와 동갑이지만 성향상 잘 통하고 만나면 친언니가 한 명 생긴 느낌이다. 통하는 게 많고 얘기하면 편하고 재밌다. 나는 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잘 통했다. 나의 인간관계나 학업 등 여러 가지 방면에 대한 열정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 우울증은 언제 있었나 싶지만 약은 꾸준히 먹고 있다. 하지만 물이 끓기 1도 전이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법, 나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신중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내 과거로 인해 겁을 다시 먹은 것도 사실이다. 곧 다시 시작될 대학생활, 그저 흘러가는 시간으로 놔두고 싶지 않다. 취직한 바다언니처럼 나도 열심히 해서 취업하면 그때야 한숨 돌릴 수 있을까. 아니면 현재가 가장 좋은 건지 모르겠다. 언니를 응원하면서도 지친 표정을 보면 이전의 바다 같은 여유는 없어 보여서 안타깝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또 바빠지겠지.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로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혼자 살아가는 삶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중에 사라지고 나서야 외로움을 느끼면 고독이 삶을 얼룩지게 할 수도 있다.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인연은 그렇다. 나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 보이는 상대의 행동과 인격,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넓은 마음을 가지고 한 발자국 뒤로 가서 바라보기에는 당장 그때는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미숙했던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둥글게 가지려 애써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어서 그 양면성을 이해하고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은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가 유하게 살 수 있다. 내 인간관계의 모토를 약간 수정하기로 했다. 최종본은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밀어내지 않되, 노력은 하자.' 마지막에 노력을 덧붙였다.
관계도 지속성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노력의 유무'가 관건이다. 그 외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그렇다면 흘러가게 띄워 보내는 수밖에. 눈물과 함께 떠다 보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해서. 항상 명심하자. 첫 번째는 항상 나 자신이다. 유시민 작가님께서 그러셨다. 사람은 가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선다고. 이타적 이기심에 대해 말씀하실 때, 내가 시위를 나가는 이유도 내가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화가 나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나 자신을 견디지 못해서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게 나쁜 것이 전혀 아니기에, 내가 첫 순위에 가는 게 당연하기에, 그다음에 상대가 오고, 그다음에 사회가 오더라도 결국 다 존재하는 우선순위의 항목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