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에세이
엄마랑 아빠, 오빠까지 만취했다. 나는 닭다리를 뜯으면서 지켜보았다. 오빠와 엄마는 둘이 짜놓은 듯이 쿵짝이 잘 맞았다.
오빠 : 내가 봤을땐, 쟤는 외고에서 나오는 게 아니였어. 끝까지 버티게 만들었어야 했어. 폰도 주면 안 되는 거였어.
마더 : 맞아, 맞아. 계속 2G폰 쓰게 했었어야 했는데 쟤 아마 기숙사에서 그거 때문에 성적 안 나온 걸 꺼야.
그렇게 둘이서 나를 빼놓고 나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해댔다. 이제 와서 뭐 어떡하라고. 이미 1년전에 일어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데. 이제는 그냥 저런 얘기도 마냥 노랫소리처럼 들린다. 머리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마음은 아니었나보다. 또 우울해졌다. 오빠는 또 기분이 안 좋아진 나를 보고 뭐라했다.
오빠 : 저거 봐라. 아빠랑 똑같아. 뭔 말 한마디만 하면 기분 안 좋아져 가지고 인상 쓰는 거.
오늘은 충동구매를 하기 딱 좋은 날이다. 산책도 할 겸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마트에 가서 곧 다가올 엄마 생신 선물과 상자를 샀다. 솔직히 이 쇼핑은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걷고, 고르고, 편지쓰고 이렇게 잡생각을 없애기 위한 내 시간이었다. 솔직히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오빠는 거기 가는 거 자체를 포기했으면서, 시도조차 안 했으면서, 계속 후회하면서 나한테 자꾸 뭐라고 하는 거 보니까 정말 불쌍하다.' 마치 자기는 고3이 없었던 것 처럼 어른이 다 되어버린 오빠를 보면 정말 고립감이 든다. 카톡을 괜스레 확인하다가 친구의 프로필을 보았다. 외고에 있던 친구 프로필이었다. 사진 속에 둘은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요즘은 졸업사진 찍는 시즌이 되어서 같이 찍었나보다. 근데 나는 그렇게 활짝 웃는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냥 버텼다면, 나도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었을까.'
문득 외고에서 친했던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서 전학가면, 도망가는 것 밖에는 안되니까 나는 절대 전학 안 갈꺼야. 우리는 여기서 받을 수 있는 혜택 자체로 고마워해야 해. 나는 외고가기 전에 엄마랑 충분히 싸웠어. 이제 더 이상 도망가는 짓은 하지 않을거야." 그럼....나는 도망 간 건가...그때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 있던 내 자신이 미워졌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결심했던 때가 있었다. 힘들고 짜증나도 버틸거라고. 그러면 이기는 거라고. 하지만 외고 나와서 좋은 대학 못 갔다는 소리를 들을 바에는 전학가는게 낫다고 생각했고, 전학을 가본 결과, 학교는 별 차이가 없다. 사람이 관건이다. 어디가 더 좋으니 거기를 가라. 이 말은 사실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디서든 열심히 하는 사람은 빛을 본다. 그저 전학 자체를 갔다는 게 처음이어서....살면서 처음이었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보고 싶었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있게 그 애들 사이에 당당히 끼일 자신이 없다. "너네는 얼마나 했어?" 하고 확인 차 물어보며 염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싫다.
남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면 내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착각했던 나는 돌아간다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밑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했을 것이다. 이제 겨우 마음 잡고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온 내게 그런 말을 한 오빠와 엄마가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밉다. 안 그러고 싶은데 연명이가 밉다. 도망과 변명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안 그러면 내가 살 수가 없다. 이미 충분히 힘들만큼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외고에 있는 친구들의 안부를 보고 싶지 않다. 나중에 들려올 그들의 소식도 접하고 싶지 않다. 욱신거린다. 아픈데 무시하고 싶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아니라고 또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부디 내 20대는 힘들더라도 행복하길 바라며 후회하는 짓을 안 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또 하겠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다시 행복해지는 것. 그러니까 감정에 휘둘릴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는 내 자신과 약속했다. 단단해지기로. 쉽게 무너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지켜야만 한다.